평화안 내용 따라 방산·재건 기업 손익 계산 달라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평화안 논의가 재차 속도를 내면서, 전후 재건 사업과 방산 수출을 둘러싼 기업들의 이해관계도 복잡해지고 있다. 미국이 중재한 28개 조항의 평화안 초안과 이후 수정안이 공개되자, 우크라이나 재건에 참여하기 위해 발 빠르게 줄을 서 온 한국 기업들은 다시 계산기를 두드렸다.
![우크라이나 평화안을 두고 재건 논의가 활발하다. [사진=인공지능(DALL-E) 생성 이미지]](https://cdn.newsworker.co.kr/news/photo/202511/404088_435353_2614.png)
공개된 평화안 초안은 큰 틀에서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전제로 ▲러시아와 비(非)공격 협정 ▲우크라이나 군사력 상한 설정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나토) 정식 가입 대신 다자 안보 보장 ▲ 러시아 동결 자산의 이자 수익을 재건 재원으로 활용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후 제네바 협상 등에서 일부 조항이 축소·수정됐지만, 전후 재건 재원 규모와 군사력 수준 같은 핵심 변수가 처음으로 문서 형태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부는 ‘영토 양보 없는 평화, 러시아의 전쟁 비용 부담’ 원칙을 재확인하며 동결 자산 활용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중이고,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도 재건 비용 분담을 놓고 이해득실을 따졌다.
한국 정부는 이미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을 염두에 둔 틀을 만들었다. 2023년 이후 정부는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와 함께 우크라이나 재건 협력을 위한 ‘원팀 코리아’를 출범시켰다. 이들은 도로, 철도, 공항, 스마트시티, 에너지 인프라, 주거 재건 등 6개 선도 프로젝트를 선정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현대건설 뉴에너지사업부 최영 전무(왼쪽)와 우크라이나 에너지부 게르만 갈루쎈코 장관(가운데), 우크라이나 전력공사 볼러디미르 쿠드리트스키 사장(오른쪽)이 우크라이나 송변전 신설 및 보수공사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현대건설]](https://cdn.newsworker.co.kr/news/photo/202511/404088_435350_2259.jpg)
개별 기업들의 움직임도 눈에 띄었다.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은 2023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Rebuild Ukraine 행사에 참여하며 우크라이나 에너지·산업 인프라 재건 플랫폼에 이름을 올렸다.
현대건설은 우크라이나 국제공항 재건·확장과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해 공항, 터미널, 교통 연계 인프라 수주 기회를 노렸다. 현대엔지니어링은 발전소, 산업 플랜트 설계와 전력 설비 복구를 중심으로 진출을 타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그룹도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을 모색 중이다. 포스코홀딩스와 포스코인터내셔널을 중심으로 철강, 인프라, 에너지, 식량을 아우르는 프로젝트를 검토했다. 또 도로 및 철도 복구와 그린 메탈(친환경 제철) 투자, 에너지 인프라 협력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열어 놓고 있다.
여기에 현대로템·국가철도공단·한국철도공사의 철도망 복구 협력, HD현대건설기계의 중장비 공급 구상 등도 더해지면서, 재건 시장은 건설을 넘어 철도, 장비, 자재까지 포괄하는 패키지 사업으로 굵어지는 분위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루마니아와 폴란드에 수출한 K9 자주포(오른쪽)와 K10 탄약운반장갑차(왼쪽)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https://cdn.newsworker.co.kr/news/photo/202511/404088_435365_3257.jpg)
반면 한국 방산 기업들엔 평화안이 양날의 검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와 K9 자주포, K10 탄약운반차 패키지 계약을 맺고 수조원대 물량을 수주했다. 루마니아, 노르웨이 등에도 자주포와 탄약 패키지를 수출하면서 유럽 동·북부 재무장 흐름의 핵심 공급자 역할로 올라섰다. 현대로템은 폴란드와 K2 전차 등의 현지 생산, 기술 이전 협의를 진행 중이며, LIG넥스원 등은 유럽과 중동을 중심으로 대공미사일, 레이더, 함정 등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나토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를 2%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합의가 이어지면서, 전쟁 중에는 탄약·자주포·전차, 전쟁 이후에는 재고 보충과 창정비·업그레이드 수요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다만 평화안의 내용에 따라 방산과 재건 기업의 손익 분기선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우크라이나 영토 문제가 냉전형 휴전으로 지속하면 대규모 도시 재건은 지연되는 반면 나토와 동유럽 국가들의 재무장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LIG넥스원 같은 방산 기업은 당분간 추가 수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재건 기업은 그렇지 못하다.
반대로 다자 안보 보장과 러시아 동결 자산 활용을 포함한 단계적 종전 시나리오가 실현되면, 이미 체결된 방산 계약은 납품이 이어지는 가운데 신규 발주는 둔화하고, 대신 공항, 철도, 발전소 같은 인프라 재건 사업이 본격 가동된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평화안이 한국 기업들에게 ‘전쟁 특수를 얼마나 더 누릴 수 있느냐’보다는 전후 평화의 비용과 이익을 나누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 선택을 요구하는 국면이 됐다고 진단했다. 재건과 방산을 아우르는 대기업일수록 다양한 시나리오에 맞춘 전략 점검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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