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수십 년을 되찾은 일본의 자신감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가 종료됐음에도 불구하고 19일 기준 달러화 대비 엔화는 150엔으로 더욱 떨어졌다. 통상 금리가 인상되면 자국 통화의 가치는 달러 대비 강세를 보이는데 정반대의 양상을 보였다. 가까운 시일 내에 추가 금리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한 일본은행의 입장이 환율시장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17년 만에 이뤄진 금리인상이지만 여전히 저금리와 엔저의 효과가...[본문 중에서]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가 종료됐음에도 불구하고 19일 기준 달러화 대비 엔화는 150엔으로 더욱 떨어졌다. 통상 금리가 인상되면 자국 통화의 가치는 달러 대비 강세를 보이는데 정반대의 양상을 보였다. 가까운 시일 내에 추가 금리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한 일본은행의 입장이 환율시장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17년 만에 이뤄진 금리인상이지만 여전히 저금리와 엔저의 효과가...[본문 중에서]

[투데이 국제 이슈] 일본이 17년 만에 첫 금리인상을 단행하면서 장기간 지속했던 마이너스 금리에서 벗어났다. 물가가 하락하고 경제활동이 침체되는 디플레이션에서 회복했다는 평가와 함께, 갑작스러운 금리인상으로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도 만만치 않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인 한국의 경제상황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17년 만에 금리인상... 사실상 양적완화 폐지


일본은행(日本銀行)이 지난 18~19일 양일간 열린 금융정책결정회합에서 기존 -0.1%였던 정책금리를 0.0~0.1%로 상향조정했다. 금리인상은 20072월 이후, 17년 만에 처음 시행한 통화정책이다. 20162월부터 지속했던 마이너스 금리는 거의 8년 만에 정상 궤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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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금리라고 해서 예금상품에 가입한 금융소비자가 시중은행에 돈을 더 냈던 것은 아니다. 마이너스 금리는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일본은행)에 맡긴 예금에 한해서만 적용됐다. 결국, 금리로 마진을 취할 수 없던 시중은행들은 여유자금을 일본은행에 예치하지 않고 저금리 대출상품으로 시장에 내놨다. 시중은행이 소비자를 대상으로 적용했던 예금금리는 0.01~0.2%로 마이너스까지는 아니었지만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이번 금리인상으로 인해 예금금리와 대출금리가 모두 오를 예정이다.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와 함께 '수익률 곡선 통제(YCC)' 정책도 폐지했다. YCC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을 0% 기준으로 ±1%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다. 수익률이 해당 범위를 벗어나면 일본은행이 국채를 매입하거나 매도해 수익률을 조정하는 것이다. 나라에서 빚을 지는 국채에 정부가 개입하면서 국채 수익률이 왜곡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주가가 급락할 경우 증시를 안정시키기 위해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입했던 제도도 중단했다. ETF란 주식시장에서 손쉽게 사고 팔 수 있는 펀드 패키지로써 주가지수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진다. 자유시장이라고 볼 수 있는 주식·펀드 시장에 일본은행이 손을 뻗치는 것도 과도한 개입이라고 판단했다. 부동산 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분배하는 '부동산투자신탁(REIT)'도 매입 대상에서 제외했다. 시중에 통화공급을 늘리기 위해 시행했던 각종 금융완화 정책은 마이너스 금리 탈출과 함께 사실상 막을 내렸다.


통화정책 정상화... 내수회복·물가안정·임금인상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은 1990년대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자 내수소비가 침체되고 기업 투자가 부진해지면서 총수요가 전체적으로 줄어든 장기불황에 빠졌다. 결국, 소비와 수요를 끌어올리기 위해 시중에 통화량을 늘리는 마이너스 금리, 수익률 곡선 통제, 상장지수펀드 매입 등 다양한 양적완화 정책을 펼쳤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일본의 내수시장이 살아나면서 마이너스였던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0%대를 넘어섰다. 물가가 상승하면서 노동임금의 인상도 체계적으로 맞물렸다. 일본 최대 노동조합 렌고(連合,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는 지난 15일 춘투를 통해 평균 임금인상률을 전년 대비 1.48%P 상승한 5.28%로 집계했다. 이번 임금인상률은 지난 33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춘투는 춘계투쟁의 줄임말로써 각 노동조합은 매년 봄 시즌에 맞춰 임금협상을 진행한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19일 기자회견에서 "다른 국가의 중앙은행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정상적인 통화정책으로 복귀했다"고 밝혔다. 통화정책의 정상화는 침체된 내수소비가 살아나고 물가상승이 안정적이며 동시에 임금인상이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에서 가능하다. 글로벌 금융그룹 홍콩상하이은행(HSBC) 프레드릭 뉴먼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통화정책을 정상화했다는 것은 일본이 디플레이션 위기에서 벗어났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의 향후 전망에 대한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앤 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국가에 투자하는 것이다.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엔화를 빌린 후 금리가 높은 미국 달러로 환전해 각종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엔 캐리는 미국의 금리인상이 본격화된 2022년부터 크게 활성화됐고 해당연도 트레이드 규모는 전년 대비 48.6% 급증한 131조 엔(1,158조 원)에 달했다. 이번 금리인상으로 수익률이 떨어질 것을 예상해 기존 투자금을 회수한다면 투자대상국의 주가가 하락할 수 있고 통화량이 늘어난 자국 금융시장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일본의 금리인상 속도가 더디고 여전히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기 때문에 엔 캐리 투자금의 회수는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무역수지와 증시에도 영향을 미칠까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가 종료됐음에도 불구하고 19일 기준 달러화 대비 엔화는 150엔으로 더욱 떨어졌다. 통상 금리가 인상되면 자국 통화의 가치는 달러 대비 강세를 보이는데 정반대의 양상을 보였다. 가까운 시일 내에 추가 금리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한 일본은행의 입장이 환율시장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17년 만에 이뤄진 금리인상이지만 여전히 저금리와 엔저의 효과가 충분히 작용했다.

다만, 금리인상에 따른 엔저효과가 주춤하면서 일본은 수출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조선, 자동차, 반도체 등 일본과 경쟁하는 수출품목에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표출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을 고수하는 전문가들은 시기상조라고 못박았다. 오히려 엔화 가치가 오르면서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 여행객의 경비가 증가하고 여행주나 항공주가 위축될 수 있다는 실물경제 관점에 무게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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