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 올림픽 노골드의 충격, 종주국 자존심 vs 세계화의 인기, 반비례의 저울질

태권도가 보육시설로 전락하면서 대한민국의 태권도는 예전치 못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태권도는 대부분 어린이가 주를 이루며, 성인이 되면서 주짓수, 무예타이,  킥복싱, 권투 등으로 그 종목을 바꾸고 있다. 태권도의 종주국 한국은 태권도를 이제 자랑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전락한 것이다.[편집자 주]
태권도가 보육시설로 전락하면서 대한민국의 태권도는 예전치 못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태권도는 대부분 어린이가 주를 이루며, 성인이 되면서 주짓수, 무예타이, 킥복싱, 권투 등으로 그 종목을 바꾸고 있다. 태권도의 종주국 한국은 태권도를 이제 자랑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전락한 것이다.[편집자 주]

[뉴스워커_스포츠 분석] 202479,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33회 파리 하계올림픽 대회 대한민국 선수단 결단식'. 이 자리에서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들의 표정은 복잡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는 태권도 선수는 단 4. 2012년 런던올림픽 이후 최소 인원이다.

이창건 태권도 국가대표팀 감독은 "태권도 종주국으로서 이번 대회에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겠다"고 다짐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보다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이런 상황은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한국은 올림픽에서 금메달 12개를 휩쓸며 '금메달 제조기'로 불렸다. 그러나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은 충격적인 '노골드'를 경험했다. 은메달 1, 동메달 2개에 그쳤을 뿐이다.

나와 관심이 같은 사람이 본 뉴스

한국태권도진흥재단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210개국 이상에서 약 8000만 명이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다. 이는 20년 전과 비교해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 결과, 해외에서 태권도를 배우는 외국인의 80% 이상이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한국 태권도의 부진은 단순히 우리의 실력이 떨어져서일까? 아니면 이는 태권도가 진정한 의미의 세계 스포츠가 되었다는 증거일까? 그리고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발펜싱, 보육원으로 전락한 태권도, 무술로서의 관심은 떨어져쓰러진 금메달 제조기


한때 태권도는 한국의 '금메달 제조기'였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한국은 올림픽에서 수많은 메달을 휩쓸었다. 양궁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금메달을 안겨준 효자 종목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영광의 시대는 끝난 듯하다.

한국 태권도의 부진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전자호구 도입 등 경기 규칙 변화에 대한 적응 문제를 들 수 있다. 2012년부터 올림픽에 도입된 전자호구 시스템은 한국 선수들의 강점이었던 정확하고 빠른 발기술의 이점을 다소 상쇄시켰다. 이에 대한 적응이 아직 완전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체계적인 선수 육성 시스템의 부재도 문제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여 새로운 시대에 맞는 선수 육성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태권도장의 역할 변화다. 많은 태권도장이 실질적인 무도 교육보다는 보육시설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부모들이 자녀를 태권도장에 보내는 주된 이유가 태권도 교육이 아닌 방과 후 돌봄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태권도의 본질을 흐리고, 엘리트 선수 육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에서 태권도의 인기가 사그라지면서 우수 인재의 유입이 감소했다는 분석도 있다. 태권도장이 보육 시설화되면서 진짜 무술로서의 효용성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도 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태권도보다는 검도, 유도, 킥복싱, 무에타이, 주짓수 같은 좀 더 실용적인 무술에 진지하게 임한다. 태권도 유단자는 많겠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무도로서의 태권도를 이어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는 단순히 스포츠 경기력의 문제를 넘어, 태권도의 문화적 가치와 위상에 대한 재고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태권도는 동양인에게 다소 불리한 스포츠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신장 대비 다리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동양인들은 '발펜싱'이라 불리는 현대 태권도 경기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올림픽과 같은 국제대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서구권 선수들의 긴 다리를 이용한 장거리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선수들은 더 많은 체력과 기술을 소모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곤 한다. 이러한 신체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욱 정교한 기술과 전략,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이 요구되고 있다.


한류의 스타트를 끊은 태권도, 세계 각지로 뻗어 뿌리내려, 실력 상향 평준화가 큰 고민


24년 현재의 우리는 ‘K-α의 수출국이다. K 뒤에 무엇을 가져다 붙여도 한류의 한 분야가 된다. K-pop, K-방산, K-drama, K-buauty 등등 수많은 영역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이 ‘K’ 자를 붙이기 이전에 이미 태권도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미 1950년대 후반에는 태권도의 해외 전파가 시작되고 60~70년대에 세계적인 태권도 연맹이 창립되기에 이른다. , 빨라도 90년대 이후에야 세계로 퍼져나간 한류의 흐름보다 몇걸음이나 앞선 시기에 이미 태권도의 수출은 진행되고 있었다. 한류의 스타트를 끊은 셈이다.

바로 이것이 역설적으로 최근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다. 바로 '태권도의 세계화'. 한때 한국의 독점적 영역이었던 태권도는 이제 더 이상 우리만의 영역이 아니다. 태권도가 세계화된 이유를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한류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세계 각지에 수많은 태권도 사범이 터를 잡고 제자들을 육성했다. 뿌리 내린 이유가 어쨌든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태권도의 매력을 느끼고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이란, 중국, 터키 등 여러 국가가 태권도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와 남미 국가들도 빠르게 실력을 키워가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각국의 태권도 훈련 시스템이 고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한국에서 사범을 초빙하거나 한국으로 유학을 와야 높은 수준의 태권도를 배울 수 있었지만, 이제는 각국에서 자체적으로 우수한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다. 이는 태권도 기술의 전파와 발전이 더 이상 한국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태권도의 세계화는 단순히 스포츠의 확산을 넘어,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의미한다. 태권도를 통해 한국의 역사, 철학, 예의범절이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소프트파워의 관점에서 볼 때, 무척 의미 있는 현상이다.


반비례 관계인 메달과 문화 수출, 태권도의 세계적 인기, 많은 메달 얻는 것이 선진국은 아냐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딜레마에 빠져있다. '종주국의 자존심''태권도의 세계화', 태권도에서는 둘 다 충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법원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저울을 떠올려보자. 어느 한쪽이 내려가면 다른 쪽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메달 획득과 세계화라는 두 현상은 반비례 관계이다.

종주국 자존심에서 나오는 메달에 대한 갈망은 분명하다. 박태준 선수는 "처음 출전하는 올림픽인 만큼 겁 없는 모습을 보여 꼭 애국가가 울려 퍼질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많은 한국인의 마음을 대변한다. 우리는 여전히 태권도에서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태권도의 세계화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이대훈 선수는 "한국팀이 메달을 많이 가져가지 못하더라도 다른 나라들이 성과를 얻었다는 것에 태권도 발전 측면에서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태권도를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세계와 공유하는 문화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기회, 새로운 도전, 태권도의 다른 모습, 꼭 금메달 제조기일 필요는 없다.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 태권도를 재해석하고, 그 가치를 현대에 맞게 재정립해야 한다.

먼저 태권도의 정신적 가치를 강조해야 한다. 최근 동양사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세계인이 많이 늘고 있다. 다행히 태권도에는 한국의 정신문화가 잘 녹아들어 있다.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삶의 철학으로서의 태권도를 더욱 강조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이는 태권도의 본질을 회복하는 동시에, 세계인들에게 더 깊은 의미로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동시에 태권도의 기술적 측면에서도 혁신이 필요하다. '발펜싱'이라는 비판을 극복하고, 더욱더 역동적이고 화려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태권도는 원래 굉장히 화려하면서도 효율적인 실전 무술이다. 아니 애초에 실전이 아니었다면 무술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올림픽 종목화를 하는 과정에서 잘라내야 했던 부분이 많다. 그 부분을 어떻게 현재의 올림픽 태권도에 다시 이어 붙이느냐가 중요하다. 이는 태권도의 스포츠로서의 매력을 높이고, 더 많은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태권도의 문화적 측면을 강화해야 한다. 태권도를 통해 한국의 문화와 역사, 철학을 세계에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태권도와 관련된 다양한 파생 문화를 발굴하고 이것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종주국이 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스포츠 외교를 넘어, 진정한 의미의 문화 교류가 될 것이다. 태권도를 통해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전 세계에 알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다각도의 접근을 통해, 우리는 태권도의 새로운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메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태권도의 본질적 가치를 세계와 공유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태권도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적인 스포츠이자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문화 태권도, 종주국이 사랑하고 발전시키지 않는 종목은 더는 유지될 수 없어


태권도는 복싱, 유도 등등과 함께 몇 안되는 올림픽 무술 종목이다. 그러나 영원할 것이라는 보장은 금물이다. 세계에는 고유의 무술들이 수두룩하고 태권도만큼이나 훌륭하다. 누군가 원한다면, 태권도보다 더 올림픽에 적합한 무술들도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 그래서 태권도는 더더욱 단순한 무술 종목으로만 멈춰있어서는 안 된다.

올림픽 태권도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태권도는 다양한 갈래가 있고 그중에는 실전성을 강조하는 진짜 무술로서의 태권도를 발전시키는 무술인들도 많다. 이들이 널리 알려져 무술로서의 태권도가 국내 성인들에게도 충분히 배울만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태권도의 본질을 추구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태권도는 발전한다.

메달이 적어진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위기의식을 가지게 하고 이를 전환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종주국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지만, 동시에 세계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이 상황을 위기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기회로 삼을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파리 올림픽은 끝이 아니다. 다음 올림픽도 끝이 아닐 것이다. 올림픽에서 보여주는 태권도는 그것의 일부분일 뿐이다. 이번 파리 올림픽의 태권도를 지켜보면서 생각해야 할 만한 것이 있다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태권도의 종주국이고 그 종목을 사랑하고 관심 가지지 않는 순간, 논할 자격이 없어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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