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액공제·가격·마진이 문제, EV4도 비슷한 이유로 미국 출시 연기

기아가 미국에서 전기차 EV9 GT 출시를 시장 여건 변화를 이유로 사실상 무기한 연기했다. 올해 초 중형 전기 세단 EV4의 미국 출시 계획을 연기한 데 이어 또 한 대의 전기차가 멈춰서면서 기아의 미국 전기차 전략이 본격적인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국, 유럽 등지에는 이미 출시한 기아의 EV9 GT [사진=KIA]
한국, 유럽 등지에는 이미 출시한 기아의 EV9 GT [사진=KIA]

EV9 GT는 2024년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오토쇼에서 처음 공개된 EV9의 최상위 고성능 트림이다. 듀얼 모터 사륜구동 시스템을 바탕으로 최대 500마력 안팎의 출력을 내고,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4.5초에 도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속도는 시속 220㎞ 수준이며, 전자식 차동제한장치와 어댑티브 댐퍼, 대용량 브레이크 등 고성능 장비도 갖췄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하반기 미국에서 판매해 EV9 라인업의 기술 쇼케이스 역할을 할 예정이지만, 현재 한국·유럽 등 일부 시장 주문만 열어둔 채 미국 출시 계획은 뒤로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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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는 앞서 EV4의 미국 출시도 비슷한 이유로 연기했다. EV4는 2025년 초 공개된 전기 세단으로 시작 가격을 약 3만9000달러(약 5500만원)로 책정했다. 원래 2026년 초 미국 출시가 예정됐지만, 올해 10월 이후 미국 시장 상황 변화를 이유로 무기한 연기했다.

미국 내 정책 환경 변화와 수익성 부담이 이런 결정의 배경으로 꼽혔다. EV9은 한국과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나뉘어 생산되며, 조지아 공장에서 만든 일부 트림은 최대 7500달러(약 1050만원)에 이르는 연방 전기차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됐다.

기아의 전기 세단 EV4 [사진=KIA]
기아의 전기 세단 EV4 [사진=KIA]

반면 한국에서 완성차를 수출하는 구조였던 EV9 GT는 세액공제 대상이 아닌 데다, 옵션을 더하면 차량 가격이 8만 달러(약 1억1000만원)를 넘어설 것으로 업계는 예상했다. 여기에 올해 9월 30일부로 7500달러의 연방 세액공제가 사실상 종료하면서, 고가 수입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은 더 떨어졌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자체는 여전히 성장세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세계 전기차 판매는 1700만 대를 넘어 전년보다 25% 이상 늘었다. 전체 승용차 시장에서 전기차 비중은 처음으로 20%를 웃돌았다.

다만 지역별 온도차가 뚜렷했다. 중국은 2024년 전기차 판매가 1100만 대 수준으로 독주하는 반면, 미국과 유럽은 보조금 축소와 정책 혼선 여파로 성장률이 둔화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에서는 특히 고가·대형 전기 SUV 수요가 가장 먼저 주춤했다. 평균 전기차 가격이 내연기관차보다 높고 충전 인프라와 중고차 가격에 대한 불안과 높은 금리·보험료 부담이 겹친 탓이다. EV9 기본 모델은 이런 여건에서도 비교적 선방했다. 2024년 1~11월 기준 미국에서 2만 대 넘게 팔렸고, 같은 기간 EV6도 2만 대 넘게 판매하며 기아 전기차 라인업의 양 축을 담당했다.

그러나 EV9 GT처럼 8만 달러 안팎의 가격이 예상되는 고성능 모델이 세액공제와 관세 보호막이 사라진 미국 시장에서 어느 정도 수요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기아의 최초 전용 PBV인 PV5 [사진=KIA]
기아의 최초 전용 PBV인 PV5 [사진=KIA]

이러한 흐름은 기아만 해당하는 현상이 아니다. 제너럴모터스(GM)는 미국 내 일부 전기차를 감산하고 수백 명 규모 인력 감축을 진행했으며, 신규 배터리 공장 가동 시점을 조정하는 등 투자 일정을 손봤다. 혼다는 GM과 협력해 출시한 전기 SUV를 시장 반응 부진을 이유로 조기 단종시키는 등 해외 완성차 업체들이 고가 전기차 라인업을 축소, 재편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전기차 판매 전략의 무게중심은 점차 판매 비중이 큰 차종과 상용 전기차 쪽으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기아는 미국 조지아 메타플랜트에서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생산을 확대해 2030년까지 현지 전동화 차량 생산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승용 전기차에서는 EV3, EV5 같은 비교적 저렴한 모델로 저변을 넓히고, 고성능 승용 전기차는 한국과 유럽 등 다른 시장에 우선 배치하는 쪽으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했다.

상용차와 PBV(목적 기반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오히려 상징적 성과가 나왔다. 기아의 첫 전기 밴 PV5는 11월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상용차 전시회 솔루트랑 2025에서 ‘2026년 세계 올해의 밴’에 선정됐다. 국제 상용차 전문 기자 26명이 참여한 심사단 만장일치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한국 제조사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기아 송호성 사장은 해당 행사에서 “기아는 오랫동안 EV 혁신을 이끌고자 노력해왔으며, PV5는 이러한 의지를 상용차 영역까지 확장한 모델”이라며 “특히 PV5는 다품종 유연 생산이 가능한 컨베이어·셀 결합 생산 시스템과 같은 제조 혁신까지 함께 이뤄낸 결과물이기에 이번 수상이 더욱 의미 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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