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한주희 기자의 쓴소리] 지난 6일 귀뚜라미그룹은 귀뚜라미보일러의 신임대표로 최재범 전 경동나비엔 부회장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지만, 대체적으로는 충격적이라는 의견이 많아 보인다.

최재범 대표, 경동나비엔 해외시장에서 큰 성과 이뤄냈지만, 경쟁사에 재취업 문제 있단 지적 많아

최재범 신임대표는 2003년 대우전자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경동나비엔의 최고위 임원이 되기까지 가전 업계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2011년 경동나비엔 대표로 취임한 이후 6년간 회사 경영을 총괄해왔다. 지난 2017년에는 부회장 자리에 올랐고,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1년간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경동나비엔에서 ‘해외통’으로 불릴 정도로 북미·러시아 시장을 개척하는 해외사업 분야에서 큰 성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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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해외시장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귀뚜라미로서는 최 대표 선임에 큰 기대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업계 전반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최 대표의 이직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다소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이해하기 쉽게 치열한 경쟁 관계로 해외에서도 유명한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예로 들어보자. 해외에서 세탁기나 냉장고 등 가전 부문에서 큰 성과를 낸 삼성전자 임원이 LG전자의 부진한 해외사업 분야를 담당하기 위해 재취업한다고 가정해보자. 쉽게 상상이 가는가.

물론 경동나비엔 측과 귀뚜라미 측이 삼성과 LG만큼 경쟁 관계가 심하지는 않다. 하지만, 고유한 기술과 영업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의 최고위 임원 인사가 경쟁 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은 부적절한 측면이 많다.

기업에서 고위 임원이 되는 경우는 대부분 내부에서 오랜 경력과 성과를 인정받아 승진하는 경우이다. 이외에도 흔히 볼 수 있는 경우는 재무 또는 연구 분야에서 부족한 전문가를 영입하는 경우이다. 이마저도 중간 임원급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최 대표의 경동나비엔에서의 영업비밀과 경영노하우...귀뚜라미로 손쉽게 이전 가능해져

이번 최 대표의 이직을 두고 여러 시각이 나오는 이유는 그동안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았던 기업의 영업비밀과 경영노하우를 이제 경쟁 기업이었던 귀뚜라미가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기술탈취에 대한 우려로 인해 기술 연구진의 재취업이 엄격히 제한되는 사례에 해당한다.

비록 최 대표가 연구원 출신은 아니지만, 경동나비엔이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그동안 들인 많은 성과를 귀뚜라미 측에 손쉽게 전할 수 있다. 경동나비엔은 그동안 고액의 연봉을 지급하며, 막대한 투자와 지원을 통해 최 대표를 양성해 왔고, 회사의 기여도에 따라 성과를 지급했을 것이다.

최 대표의 이직을 두고 경동나비엔 측에서는 별다른 입장이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경동나비엔의 입장 표명이 없다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최 대표의 경쟁업체 재취업은 단순 이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업계 전반에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도 있다.

경동나비엔 측은 최 대표와 ‘경업(전직)금지 약정’은 없었다고 밝혔다. ‘경업금지 약정’을 하는 이유는 경쟁업체로의 이직이 전에 재직했던 회사에 피해가 될 경우를 대비하려는 조치이다.

취업의 자유 쉽게 제한해서는 안 되지만, 앞으로의 경영 실적 의심받을 가능성 배제 못 해

최재범 대표
최재범 대표

헌법상 보장된 취업의 자유를 함부로 제한해서는 안 되지만, 기업의 영업상 비밀도 보호할 가치가 크다. 특히 경영성과를 좌우할 수 있는 주요 원천 기술이나 영업전략들은 특별히 더 보호해야 한다. 기업 내부상황을 세부적인 것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최고위 임원이 경쟁사에 재취업할 경우, 전·현직 기업 구성원의 반발도 예상된다.

최 대표는 임기 내내 자신이 펼치는 경영상 모든 조치를 의심받을 것이다. 경동나비엔에서 엄격히 보호하는 경영전략이나 기술 유출이 있지는 않은지 관심받게 될 것이다.

귀뚜라미 측은 경동나비엔의 성공사례가 자사에도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그럼 최 대표는 이전에 재직했던 경동나비엔과 경쟁해서 실적을 내야 한다. 기업의 경영전략 상 타사의 약점을 파고들어 그 약점을 이용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외부에 이미 알려진 사실과 내부 구성원만 알고 있는 약점을 이용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앞으로 최 대표가 경동나비엔과의 경쟁 관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귀뚜라미를 성장시킬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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