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자발적 임신 중단 자유 인정

지난달 28일 프랑스 상원은 찬성 267명, 반대 50명의 뚜렷한 표차로 낙태의 자유를 가결했다. 이어 현지 시각 4일 상원과 하원은 베르사유궁에서 합동회의를 통해 최종 표결에 들어갔고 찬성 780명, 반대 72명의 압도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며 낙태 권리 개헌안을...[본문 중에서]
지난달 28일 프랑스 상원은 찬성 267명, 반대 50명의 뚜렷한 표차로 낙태의 자유를 가결했다. 이어 현지 시각 4일 상원과 하원은 베르사유궁에서 합동회의를 통해 최종 표결에 들어갔고 찬성 780명, 반대 72명의 압도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며 낙태 권리 개헌안을...[본문 중에서]

파리시, 에펠탑을 밝히며 낙태권 지지


프랑스가 세계 최초로 헌법에 낙태할 자유를 명시한 국가가 됐다. 지난달 28일 프랑스 상원은 찬성 267, 반대 50명의 뚜렷한 표차로 낙태의 자유를 가결했다. 이어 현지 시각 4일 상원과 하원은 베르사유궁에서 합동회의를 통해 최종 표결에 들어갔고 찬성 780, 반대 72명의 압도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며 낙태 권리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헌법 제 34조에 여성이 자발적으로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조건을 법으로 정한다는 내용이 추가된 것이다. 역사적인 표결 결과에 장내의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로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고 앞으로 여성의 인권 신장에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발표 직후 파리는 에펠탑에 조명을 밝히며 나의 몸은 나의 선택이라는 메시지를 띄워 광장에 모여 전광판으로 결과를 지켜보던 수많은 지지자들의 열렬한 환호에 동조했다. 에릭 듀퐁-모레티 프랑스 법무부 장관은 프랑스가, 여성이 자신의 신체에 대한 통제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받는 최초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는 오늘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며 결정을 지지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이번 개헌이 프랑스의 자부심이며 전 세계에 보내는 메시지라며 자축했다. 그는 이미 지난해,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 인권 운동가 지젤 알리미를 추모하는 연설에서 이번 개정안 추진을 약속한 바 있다.


미국의 보수 판결이 촉매제


지난 20226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했던 기존 법안을 번복하며 전국적인 시위에 봉착한 바 있다. 이는 1973년의 로 대 웨이드 판결45년 만에 뒤집는 결정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 임명된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이 판결을 맡은 결과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법원의 결정이 나온 이후 미국을 150년 전으로 후퇴하게 만든 결정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기도 했다. 이로써 낙태가 대대적으로 금지되면서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결과라며 수많은 시위로 맞섰다. 반면에 낙태 반대론자들은 생명 보호와 종교적인 이유 등을 들어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기도 했다. 미국은 각 주마다 성향에 따라 낙태 허용 판결을 다르게 적용하는데 현재 14개 주에서는 낙태를 여전히 금지하고 있지만 점점 더 많은 주들이 제한적 허용으로 돌아서고 있는 추세다.

그동안 프랑스에서는 미국의 행보를 지켜보며 많은 이들이 낙태를 아예 헌법상의 기본 권리로 명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었다. 프랑스 보다 먼저 여성들의 낙태 권리를 인정했던 미국의 급박한 변화는 지지자들의 우려와 함께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촉매제가 되었고 마크롱 대통령의 동의 역시 이끌어낼 수 있었다. 상하원 재적의원 3/5의 동의를 얻으면 국민 투표 없이도 개정이 가능하다는 이점을 이용해 마크롱 정부가 직접 헌법 개정안을 제출하며 개헌을 주도했던 것이다. 이미 2022년 말 상하원의 의견 불일치로 한차례 개정안 실패를 겪은 후 정부가 나서서 결국 최종 표결을 이끈 셈이다.


진보적인 결정인가 퇴보인가


한편 교황청은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며 생명 보호를 모든 정부에 호소하는 개헌 결정 반대 성명을 냈다. 낙태권은 찬반 여론이 뜨거운 게 사실이기에 개헌 결정 순간에도 극렬하게 대립했던 반대쪽 의견들을 프랑스 정부가 과연 빠르게 보듬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또한 최근 지지율 하락세를 겪고 있던 마크롱 대통령이 이번 개헌을 통해 여성들 사이에서 이미지 세탁을 통한 정치적 반등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연금 개혁과 농민 시위, 우크라이나 파병 등의 문제들로 끊임없이 국내외 언론의 질타를 받아왔기에 그의 다음 행보가 어디로 이어질지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프랑스는 1975년부터 낙태죄를 폐지하고 일반 법률에서 이미 여성들의 결정권을 보장하고 있었기에 가시적으로 달라지는 면은 없다. 하지만 이번 표결은 여성들의 기본 권리로서 아예 낙태를 헌법에 명시, 되돌릴 수 없는 법적 장치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인권에 대한 진보와 퇴보를 저울질해보는 역사적 사건으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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