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의도 숨어있어” vs. “우리나라 지폐부터 고쳐야”

일본 재무성은 이번 신규 지폐는 교과서에 등장할 만큼 남녀노소 모두의 존경을 받는 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또한, 위조 방지를 목적으로 세계 최초의 홀로그램 기법을 도입해 지폐 속 인물이 3D처럼 회전하며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했다. 천 엔과 오천 엔은 20년 만에, 만 엔은 40년 만에...[본문 중에서]
일본 재무성은 이번 신규 지폐는 교과서에 등장할 만큼 남녀노소 모두의 존경을 받는 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또한, 위조 방지를 목적으로 세계 최초의 홀로그램 기법을 도입해 지폐 속 인물이 3D처럼 회전하며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했다. 천 엔과 오천 엔은 20년 만에, 만 엔은 40년 만에...[본문 중에서]

[뉴스워커_더 자세한 시사] 일본에서 발행하는 신규 지폐의 새로운 인물 선정에 논란이 일고 있다. 만 엔권 지폐에 선정된 인물이 한국 일제강점기의 주역으로 활동했던 시부사와 에이이치이기 때문이다. 일부 지식인은 역사적 의도가 내포돼 있다며 신랄하게 비판했고, 일각에서는 타국 화폐 인물에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2009년 첫 발행한 오만 원권 지폐 인물로 선정된 신사임당에 대한 논란부터 종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만엔권 인물, 경제침탈 장본인 시부사와 에이이치


일본은 화폐 디자인을 새롭게 바꾼 3(천 엔, 오천 엔, 만 엔)3일 발행할 예정이다. 국내에서 논란 중인 화폐는 만 엔권의 인물로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1840~1931). 그는 현 미즈호은행 산하 국립제일은행, 문부과학성 이화학연구소, 세계 5대 증권거래소 중 하나인 도쿄증권거래소 등 500여 개 기업의 설립과 경영에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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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주요 인물로 평가된다. 시부사와는 구한말 한반도에 철도를 부설하고 일제강점기 한국전력의 전신인 경성전기 사장을 맡은 바 있다. 그는 일제의 국권 수탈 목적으로 다양한 경제적 이권을 앗아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인물이다.

대한제국 시절에는 조속한 식민지화를 진행하기 위해 기존의 엽전이나 백동화를 회수하고 새로운 일제 통화로 대체해 통용하기도 했다. 1902~1904년 시부사와가 설립한 제일은행을 통해 스스로 지폐 속 인물을 자처하고 1, 5, 10원권에 자신의 초상을 넣어 발행했다.

일본 재무성은 이번 신규 지폐는 교과서에 등장할 만큼 남녀노소 모두의 존경을 받는 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또한, 위조 방지를 목적으로 세계 최초의 홀로그램 기법을 도입해 지폐 속 인물이 3D처럼 회전하며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했다. 천 엔과 오천 엔은 20년 만에, 만 엔은 40년 만에 교체하는 것이다.


서경덕 교수 역사를 수정하려는 전형적인 꼼수 전략


일제시대 국권침탈의 장본인으로 여겨지는 시부사와가 일본의 신권 속 인물로 드러나자 한국에서는 논란이 됐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국내·외로 홍보하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이번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서 교수는 일제 식민 지배를 받은 한국에 대한 배려가 없을 뿐만 아니라, 역사를 수정하려는 전형적인 꼼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이들의 이런 행위는 언제쯤 끝이 날까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1만엔권의 등장 인물은 지난 2019년 아베 정권에서 결정한 것인데, 이를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발행하는 기시다 정권도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앞서 서 교수는 시부사와의 일제침탈 행적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며 제국주의 시대에 대한 비판과 한국의 역사적 아픔을 강조했다. 특히 시부사와에 대해 “(한국의)경제 침탈에 앞장선 인물로 비판받아 왔다고 부연했다.

이 같은 비판에 동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일본 제국주의의 주요 인물을 지폐 초상화로 선정하면 일제의 침탈 역사에 정당성이 부여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양국간 청산되지 못한 일제강점기의 역사인 만큼 피해국인 한국에서 나올 수 있는 당연한 반응이라는 의견이다.


여전히 논란 중인 신사임당... “독립운동가로 바꾸자


일각에서는 타국 화폐에 간섭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일본의 신 지폐 인물 선정을 지지하는 것이 아닌 우리부터 잘하자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던 독립운동가를 지폐 속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2009년 첫 발행한 오만 원권의 인물 신사임당은 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한국은행은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의식 제고와 여성의 사회참여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문화 중시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자녀의 재능을 살린 교육적 성취를 통하여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며 신사임당의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후 여성계 및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거센 반발이 일었다.

특히, 여성계의 반대는 상당히 심했다. 문화미래이프, 호주제폐지시민모임 등 여성단체는 현모양처라는 이데올로기가 일본 식민통치의 잔재라며 비판했고 최초의 여성 화폐 인물로 독립운동가 유관순을 지목했다. 여성계 외 지식인들도 안중근, 윤동주, 안창호, 김구, 윤봉길, 신채호, 조마리아 여사 등 인물을 내세웠다. 화폐는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자 한 국가를 대표하는 정체성인데 신사임당은 그러한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편, 현재 일본 천 엔권에는 매독 병원체인 스피로헤타를 발견한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요, 오천 엔권에는 근대 여류소설가 히구치 이치요, 만 엔권에는 근대계몽사상의 뿌리 후쿠자와 유키치가 있다. 3일 발행될 새 지폐 천 엔권에는 세균학의 아버지이자 흑사병 페스트균을 발견하고 파상풍 치료법을 개발한 기타자토 시바사부로가, 오천 엔권에는 일본 최초의 여성 유학생이자 여성 교육의 선구자 쓰다 우메코가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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