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세운4구역 토지주들 기자회견 열고 정부에 반발하기도

서울시 종묘 앞 세운4구역을 둘러싼 갈등이 대법원 판결 이후 더 커지고 있다. 국가유산청과 정부, 학계는 세계유산 경관 훼손을 우려하고, 토지주와 시행사, 시공사 측은 재산권 침해를 주장하며 개발과 유산 보존을 둘러싼 주장이 정면충돌했다.

종묘 전정 전경 [사진=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종묘 전정 전경 [사진=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이달 6일 대법원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종묘 경계 100m 이내) 밖까지 규제하던 서울특별시 문화재보호 조례를 적법하다고 본 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발표한 대로 세운4구역 건물 허용 높이를 종로변 55m에서 101m, 청계천변 71.9m에서 145m까지 올리는 방침을 유지했다.

세운4구역은 2004년 재정비촉진지구,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된 뒤 20년 넘게 첫 삽을 뜨지 못했다. 2000년대 중반 종로구청을 시행자로, 대림산업·롯데건설·금호산업 컨소시엄을 시공사로 한 30층대 복합개발 구상이 나왔지만, 종묘 경관 보존을 둘러싼 문화재 심의 과정에서 계획이 여러 차례 수정되거나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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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시행 주체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로 바뀌고 설계도 여러 번 변경됐지만, 고도 제한과 부동산 경기 변동이 겹치며 사업은 착공 직전 단계에 멈춰 있었다.

세운 4구역 시공사로 나선 코오롱글로벌의 CI [사진=코오롱글로벌]
세운 4구역 시공사로 나선 코오롱글로벌의 CI [사진=코오롱글로벌]

이번 시공의 시행사 SH공사는 2019년 1월 코오롱글로벌과 약 4800억원 규모 공사도급계약을 맺었고, 코오롱글로벌은 지하층과 상업, 오피스텔, 호텔 등이 결합된 연면적 30만㎡ 안팎 복합시설 9개 동을 짓는 시공사로 참여했다.

당시 계획에는 최대 18층 높이, 공사 기간 35개월, 2024년 준공 목표 등이 제시됐지만, 문화재 심의와 높이 규제 논란이 이어지면서 공정은 본격 착공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 상태다.

사업성 논란의 중심에는 높이 규제가 있다. 2018년 문화재 당국이 종묘 경관을 이유로 세운4구역 최고 높이를 71.9m로 제한한 이후 토지주와 정비업계에서는 공공기여와 금융비용을 감안하면 사업 지속이 어렵다는 불만이 쌓였다.

같은 세운지구 안에서도 이미 여러 건설사가 고층 복합단지를 올려 사업을 진척시킨 구역이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6-3-4구역에서 대우건설이 시공을 맡은 세운 푸르지오 헤리시티는 지하 9층~지상 26층, 600세대가 넘는 주거·도시형생활주택 복합단지로 조성돼 도심 소형 주거 수요를 겨냥해 분양을 마쳤다. 청계천과 세운 상가를 잇는 보행 동선과 상가·오피스·생활형 숙박시설이 함께 들어가면서 세운지구 재개발의 대표 완공 사례로 거론됐다.

이번 갈등의 또 다른 축은 세계유산 규제다.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때부터 주변 고층건물 인허가를 자제해 경관을 보존하라는 권고를 받은 바 있다.

국가유산청은 이 권고를 근거로 2018년 세운4구역 높이 상한 71.9m를 제시했고, 올해 4월에는 서울시에 유산영향평가를 먼저 시행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아직 공식 회신을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단이 조례 적법성에 초점을 맞췄지만, 세계유산위원회나 유네스코 차원의 평가는 별도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종묘 제례악 일무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종묘 제례악 일무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부와 학계·시민단체는 종묘 앞 고층 개발이 현실화하면 세계유산 지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가유산청은 종묘의 세계유산 등재 상태를 지키는 데 필요한 법, 제도 보완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무총리실도 특별법 제정과 제도 개선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국고고학회를 비롯한 관련 학회와 협회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세운4구역 고층 개발 중단을 촉구했다. 시민단체 역시 왕릉 인근 아파트 논란과 비슷한 갈등이 종묘에서도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맞서 세운4구역 토지주들은 지난 11일 다시세운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방침에 정면으로 반발했다. 토지주들은 20년 동안 토지 이용과 재산권이 제한된 데 따른 피해가 막대하다며, 국가유산청이 개발을 막으면 직권남용과 위헌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도심 개발 사업은 사업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중요한데, 세운4구역의 경우처럼 장기간 사업이 지연되면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문화재 보존과 재산권 보호라는 사회적 가치가 충돌할 경우, 이를 합리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명확한 행정적, 제도적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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