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배신, 세상 물정 모르는 스타덤의 부작용, 남현희-전청조 사건도 같은 맥락

‘돈’은 스타들이 통장에 가지고 있는 눈에 보이는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명성과 신뢰 자체가 돈으로 전환될 수 있다. 미즈하라와 전청조는 그것을 손에 쥐고 ‘이용’했다. 오타니나 남현희가 그들에게 자신의 ‘분신’ 역할을 부여한 순간, 그 신뢰는 값어치가 되어서 누적된다. 오래, 그리고 강하게 신뢰할수록 불어난다. 어느 순간 이들은...[본문 중에서]
‘돈’은 스타들이 통장에 가지고 있는 눈에 보이는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명성과 신뢰 자체가 돈으로 전환될 수 있다. 미즈하라와 전청조는 그것을 손에 쥐고 ‘이용’했다. 오타니나 남현희가 그들에게 자신의 ‘분신’ 역할을 부여한 순간, 그 신뢰는 값어치가 되어서 누적된다. 오래, 그리고 강하게 신뢰할수록 불어난다. 어느 순간 이들은...[본문 중에서]

[뉴스워커_스포츠 분석] 2024년 메이저리그 개막전인 서울 시리즈가 고척돔에서 진행 중이던 2024320, 오타니의 오랜 전속 통역사인 미즈하라 잇페이(水原一平)가 불법 도박을 해왔고 그것 때문에 지게 된 거액의 빚을 갚으려는 의도로 오타니의 은행 계좌에서 돈을 절도한 혐의로 구단으로부터 해고되었다. 미즈하라와 관련된 스캔들은 21(한국시간)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ESPN이 최초로 보도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미즈하라는 도박을 위해 오타니의 은행 계좌에서 최소 450만 달러(605000만 원)를 빼돌렸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오타니가 나의 도박 빚을 갚아주기 위해 직접 컴퓨터에 접속해 도박사에게 송금하였다고 밝힘으로써 오타니도 자신의 불법 도박과 무관하지 않다는 식의 주장을 하였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오타니 또한 불법 도박에 대한 징계를 피할 수 없어 보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자신의 주장을 번복함으로써 해당 보도는 불발되었다. 미즈하라는 "분명 오타니는 이 도박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 오타니는 나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나 또한 이것이 불법 도박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스포츠 불법 도박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다저스 측이 오타니는 절도를 당한 피해자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지만, 진술이 번복된 부분을 아직 많은 사람이 석연치 않다고 판단, 오타니가 진짜 단순한 피해자인지, 공범이라면 어디까지 연루가 되었던 것인지는 본사건을 수사 중인 FBI를 비롯해 LA다저스 측과 MLB 등에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고 있다. 결국, 그동안 함구하고 있던 오타니가 직접 입을 열었다. 오타니는 25일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새로운 통역사와 나타나 기자회견을 갖고 "믿었던 사람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매우 슬프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한 "미즈하라는 내 계좌에서 돈을 훔치며 거짓말을 했다. 지금 심정은 충격을 넘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분신처럼 다니던 미즈하라 잇페이,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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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하라 잇페이는 1984년생으로 홋카이도 도마코마이시에서 태어나, 1991년에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LA로 이민을 갔다. 최근에는 그의 아버지 히데마사(英政) (64)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코스타메사에 있는 이자카야(선술집) ‘HACHI’에서 일하며 우와사와 나오유키 투수를 만난 일화도 소개되었다. 논란 이후 학력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미국에 오게 된 미즈하라는 캘리포니아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에서 공부했고 졸업 후에는 통역사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활동한 오카지마 히데키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

그 이후 그는 2013년에 홋카이도 니혼햄 파이터즈의 팀 통역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니혼햄에 1순위로 드래프트된 오타니 쇼헤이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2017, 오타니가 에인절스로 이적하게 되자, 니혼햄을 떠나 오타니의 전속 통역으로 거의 10년간 활동하게 된다.


단순 통역사 이상의 의미, 가족이 아닌 가족이 된 미즈하라


오타니는 연고가 없는 미국으로 오게 되면서 문화적 차이와 언어적 차이로 인해 미즈하라에게 통역사 이상의 의미로 크게 의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에인절스 입단 후 첫 스프링 트레이닝 기자회견에서 오타니는 미즈하라가 전속 통역사가 된 이유에 대해 "5년 동안 니혼햄에서 함께 지내며 많이 신뢰하게 됐고, 그런 분이 통역을 해주신다면 정말 든든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201811월 일본 기자 클럽에서 열린 회견에서 오타니는 자신에게 버팀목이 된 사람에 대한 질문미즈하라 씨의 이름을 언급하기도 했을 정도로 많은 신뢰를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지난 20226월에는 메이저리그 경기 도중 벤치 클리어링이 발발했는데, 당시 미즈하라가 오타니를 보호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본 매체 풀카운트는 그해 628"미즈하라 잇페이 통역이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지고 있는) 한가운데로 들어가려는 오타니를 전속력으로 달려가 막았다. 영웅적인 행동이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외에도 그는 경기 전 오타니가 몸을 풀 수 있게 캐치볼도 함께하고 호텔에서 아침도 같이 먹고 일본에 있는 오타니 부모님이나 가까운 지인들하고도 연락을 주고받을 만큼, 오타니에게 미즈하라의 존재는 통역사 이상의, 매니저를 넘어 미국에서 의존할 수 있는 가족의 의미였다고 볼 수 있다.


남현희의 남편이 되었을 뻔한 정청조. 신뢰의 가격은 27억원


지난 한 해, 한국 스포츠계를 뜨겁게 달궜던 사건을 하나 꼽으라면 펜싱 영웅 남현희-정청조 스캔들일 것이다. 전대미문의 사기극이었던 이 사건은 지난달 29일 서울 송파경찰서가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방조 등 혐의를 받는 남 씨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불송치를 결정하면서 일단 진정세를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남현희는 이 사건의 공범이 아니냐는 사람들의 의심을 강하게 받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유명인을 대상으로 한 사기 사건은 많았으나 상식적인 수준에서는 도저히 말도 안 되는 거짓으로 포장한 전 씨를 남현희가 믿고 따라주면서 피해가 커졌기 때문이다.

20231023일 남현희는 전청조라는 인물과 재혼한다고 발표했지만, 각종 의혹과 논란이 증폭되면서 단 이틀 만인 1025일에 결별했다. 그 논란 및 이후 경과에서 전청조에게 금전적 사기 피해를 본 사람이 수없이 드러났고 사건은 증폭되었다. 남자인 줄 알았던 전청조의 진짜 성별은 여자였으며, 유명 재력가의 후손인 것도 거짓말이었다. 전 씨의 만행은 계속 나왔고 밝혀진 것에 의하면 이름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거짓말일 정도로 만들어진 캐릭터였다. 그러나 남현희는 전청조라는 가짜 캐릭터를 진짜로 믿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성별조차도 남자로 믿었다고 했다. ‘재력가의 후손이라는 점도 허술한 부분이 많았지만, 남현희는 신뢰했다고 한다. 일반인이라면 한 번쯤 의심해 볼 만한 내용을 남 씨가 모두 신뢰한 것을 두고 사람들은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이러한 전 씨에 대한 남 씨의 무한한 신뢰가 결국 전 씨가 사기 행각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전 씨는 본인이 만들어 낸 재력가의 이미지와 남현희가 가지고 있는 펜싱 영웅이 주는 신뢰를 이용하여 사기를 쳤기 때문이다. 만약 이 둘 중 단 한 개라도 없었으면 전 씨의 사기행각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전청조에 대한 남현희의 신뢰의 대가는 272000만원이었다.


세상 물정 어두운 스타덤의 부작용. 관심받을수록 밀려오는 내면의 공허함


오타니 통역사의 도박 사건남현희-전청조 사건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둘 사건에는 두 개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바로 스타덤무한신뢰이다. 오타니는 투타 겸업이라는 인간으로서 한계를 뛰어넘는 실력으로 MLB에 진출하며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남현희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고 이를 포함, 국제대회에서 딴 메달만 99개인 국민펜싱 스타이다. 스포츠에서 성공한 선수들은 운동에 집중하느라 일반인이 겪을 사회적 과정이 생략된 경우가 많다. 그리고 본격적인 공인의 자격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다. 대중의 관심은 곧 경제적 성공과 연결된다. 그것은 곧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으로 바뀌며 둔감해진다. 누군가 자기 자신을 따르는 것이 스타가 가지고 있는 명성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로 본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인지 구분이 모호해진다. 바로 이 점이 이들이 사기에 취약한 부분이다.

스타덤에 오른 선수들의 내면은 그리 강하지 못하다. 선수 본인이 받는 출처 없는 관심은 이들의 내면을 더욱 약하게 한다. 항상 대중에게 받을 관심을 준비하는 것도 이들에게는 심리적인 부담이다. 그것에 반응해 줄 대상이 너무 많은 것이다. 정작 이들의 자아는 불안하며 때로는 큰 우울감에 빠질 가능성도 크다. 겉보기에는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연예인들이 돌연 비극적인 소식을 전해오는 사례도 많다. 이러한 연유로 본인 주변 사람들에게 더욱 의존적으로 될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인정받고 싶은 심리적 욕구, 그것에서 얻는 삶의 에너지가 그들에게 주는 의미는 크다. 이 상황을 이해할 때 왜 위의 두 선수가 미즈하라나 전청조에게 별다른 의심 없이 자신의 곁을 허락했는지를 공감할 수 있다.


경계하고 의심할 줄 아는 자세를 배우는 것이 필요


성공한 선수들이 가지는 마음 자세에는 항상 긍정적인 자세가 포함된다. 불안한 미래와 안타까운 자신의 상황에 대해 좌절하지 않고 항상 높은 곳을 꿈꾸는 마음가짐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을 준다. 흔히 우리는 스포츠 정신을 인간 승리에 빗대곤 한다.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 진정한 스포츠의 의미라고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팬들이 보는 인터뷰나 SNS에 부정적이고 우울한 이야기들을 하는 것은 그들의 스타덤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언제나 강하고 자리에 걸맞은 강인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스스로 압력을 느낀다.

은 스타들이 통장에 가지고 있는 눈에 보이는 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명성과 신뢰 자체가 돈으로 전환될 수 있다. 미즈하라와 전청조는 그것을 손에 쥐고 이용했다. 오타니나 남현희가 그들에게 자신의 분신역할을 부여한 순간, 그 신뢰는 값어치가 되어서 누적된다. 오래, 그리고 강하게 신뢰할수록 불어난다. 어느 순간 이들은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신뢰를 분산하는 것을 힘들게 한다. 그리고 특정 시점에 도달하면 그것은 어떤 형식으로든 으로 전환되어 그들의 수중에 들어간다. 미즈하라가 가족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로 커지는 시점에서 오타니는 그에 대한 의존성을 한 번쯤 의심해 봤어야 한다.

스타들은 칼을 직접 든 강도를 마주할 확률보다 신뢰에 기반한 배신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내면적 양면성으로 인해 한번 준 믿음을 의심하기는 쉽지 않다. 자신에 대한 무한긍정을 가지는 스타들은 배신당했을 때 잃는 것이 너무 많다. 고작 저따위 사기꾼에게 대스타인 내가 이용당한다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스타덤의 부작용은 이들은 사기를 위한 가스라이팅을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운동만 잘한다고 될 것이 아니다. 선수도 곧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유명해질수록 한 번쯤 그 신뢰를 의심할 줄 아는 용기를 내는 것이 단순한 스타를 넘어 위인이 될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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