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때문에 싸우고, 경기 전에 놀음판. 국민이 화난 진짜 이유

축구협회는 선수들 복지 차원으로 소집 기간이 긴 대회에 참가할 때 선수들이 자유롭게 숙소 내에서 여가를 보낼 수 있도록 카드, 장기, 바둑, 보드게임, 비디오게임기가 비치된 휴게실을 운영해왔다고 한다. ‘도박’은 아니지만, 민감한 소집 기간에 스테프와 선수가 직접적으로 만나는 것을 피해야 했고, 또 휴게실 사용은 선수들만 허락되는 것인데 스테프가 이용한 것이...[본문 중에서]
축구협회는 선수들 복지 차원으로 소집 기간이 긴 대회에 참가할 때 선수들이 자유롭게 숙소 내에서 여가를 보낼 수 있도록 카드, 장기, 바둑, 보드게임, 비디오게임기가 비치된 휴게실을 운영해왔다고 한다. ‘도박’은 아니지만, 민감한 소집 기간에 스테프와 선수가 직접적으로 만나는 것을 피해야 했고, 또 휴게실 사용은 선수들만 허락되는 것인데 스테프가 이용한 것이...[본문 중에서]

손흥민과 이강인의 일명 ‘탁구 게이트’ 이후 좀 잠잠해지나 싶더니 대표팀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지난 13일, 대한축구협회는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준비 기간 축구협회 직원과 일부 선수들이 카지노에서 쓰이는 '칩'을 놓고 '카드 게임'을 했다는 소문이 돌자 이를 인정하였다. 문제가 된 직원은 선수단 지원 업무를 맡은 팀장급 스테프였으며, 카드놀이에 참여한 선수들은 1996년생 이하의 어린 선수들 3~4명이었다고 한다. 축구협회 설명에 따르면 문제의 사건은 지난 1월 3일~10일까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진행된 전지훈련 기간에 발생했다. 축구협회 직원 A 씨는 한국에서 가져온 '카지노 칩'으로 카드놀이를 했다고 알려졌다. 카드놀이에 걸렸던 판돈은 4~5만 원 수준으로 전지훈련 도중 일부 선수와 지원 스태프 간 갈등이 발생하자 이를 푸는 과정에서 카드놀이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축구협회는 카드놀이를 하게 된 과정, 판돈의 액수 등을 놓고 볼 때 이들이 '도박'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자체 결론을 내린 상태이다. "선수들이 음료 내기 등을 위해 돈 계산을 하는 등 소액의 내기를 한 적이 다수 있었다"면서 "(이번 사건은) 도박성 행위와는 엄연히 다른 부분"이라고 말했다. 축구협회는 선수들 복지 차원으로 소집 기간이 긴 대회에 참가할 때 선수들이 자유롭게 숙소 내에서 여가를 보낼 수 있도록 카드, 장기, 바둑, 보드게임, 비디오게임기가 비치된 휴게실을 운영해왔다고 한다. ‘도박’은 아니지만, 민감한 소집 기간에 스테프와 선수가 직접적으로 만나는 것을 피해야 했고, 또 휴게실 사용은 선수들만 허락되는 것인데 스테프가 이용한 것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축구협회는 지난달 20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해당 스테프의 직위를 해제했다.


법적으로 도박이 아니라고? 초점 잘못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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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의 사전적 의미는 ‘돈이나 재물 따위를 걸고 주사위, 골패, 마작, 화투, 트럼프 따위를 써서 서로 내기를 하는 일’을 일컫는다. 형법에는 ‘도박죄’가 존재한다. ‘재물을 걸고 우연한 승부에 의하여 승자에게 이를 교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도박죄를 판단하는 데는 재물의 성격은 ‘일시적인 경제적 가치’가 아니어야 하고 행위가 상습적, 지속적이어야 하며, 도박의 성질과 방법, 규모, 목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축구협회가 위에서 해명했듯 ‘스트레스를 푸는(목적) 과정에서 음료 내기 등의 행위(비목적성, 비상습성, 일시적 가치)’는 적어도 법적으로는 범죄행위라 보기 어렵다.

이들의 행위가 도박이 아니라고 해서 ‘놀음’이 아니라고 봐 주기가 힘들다. 일각에서는 ‘카드 게임 한판 해서 스트레스 좀 푸는 것을 도박했다고 비화한다’고 말하지만, 도박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한 국가를 대표해서 나간 선수들이다. 축구협회가 위임받은 국가대표 관련 사업은 엄연한 정부의 위탁 사업으로, 세금과 진흥 기금이 사용되는 ‘공적 업무’이다. 즉, 이들은 ‘공공성’에 걸맞은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며 한 국가의 스포츠 분야를 대표하는 곳이다. 절반은 공무원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자들이 아시안컵이라는 큰 대회의 일전을 앞두고 준비하는 훈련 기간에 규정을 어기고 판돈이 걸린 게임을 즐겼다는 것이 문제다. 4~5만 원 수준? 연봉이 ~억에서부터 시작하는 선수 및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4~5만 원이 큰돈이 아니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작은 돈이 아니다. 명심할 것은 도박이 범죄인지 단순 게임인지의 구분은 그 사회의 ‘상식적 허용 범위’라는 것이다. 노인정에서 하는 100원짜리 고스톱도 지속적이고 목적이 분명하면 도박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나간 전지훈련에서 한국에서 가져간 ‘칩’까지 사용한 ‘놀음’인데 이것이 어르신들 100원짜리 고스톱보다 도박이 아니라는 말은 ‘법적 표현’을 빌려 쓴 주장일 뿐, 그것을 용납하는 사회의 상식이 그렇지 않으면 도박이다.


그 세대의 자율성 인정? ‘MZ세대’라는 단어는 허상일 뿐


SNS에 오가는 의견들을 보면 이들의 행위에 대해 ‘그깟 게임 좀 한 것이 뭐가 대수냐?’, ‘그러는 너네들은 놀러 가서 내기 고스톱, 포커 한 번 안 쳐봤냐?’, ‘경기 중에 있었던 일도 아니고 휴식 시간에 한 것을 가지고 트집 잡는다’, ‘MZ세대의 특성을 모르는 노인들 시각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맞는 말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이 게임에 참가한 대부분의 선수가 1996년생이라는 ‘나이’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무적의 권리인 것인가? 누가 MZ세대인가?

흔히 떠올리는 MZ세대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디지털, 공과 사, 개인주의, 자유분방, 차별화, 공정성, 자기 투자, 수평적, 놀이 문화, 개성, 자기애, 유행 등등이 이들의 특징이라고 불린다. 이들의 연령대는 1980~2010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이 나이대에 속하는 모두를 MZ세대로 분류해야 함이 옳고, 그들의 특징이 저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단 30년의 세대 범위를 아우를 수 있는 인구학적인 분류는 없다. 10년이면 강산이 아니라 나라가 바뀌는 세상에 살고 있을 만큼 변화가 빠른 시대이다. ‘MZ세대’라는 프레임은 좀 오래된 언어로 바꾸면 그냥 ‘요즘 것들’이 된다. ‘요즘 것들’은 특정 범위가 포함된 개념이 아니다. 화자 본인을 기준으로 지칭하는 대상은 상대적이다. ‘요즘 것들은 ~가 없어’라는 애초에 범위가 있을 수 없는 개념이 ‘MZ세대’라는 단어로 묶이면서 대상이 특정되고 선입견이 ‘씌워’진다. ‘언어적 상대성’이 무서운 것은 A라고 불리면 진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어가 그렇게 불리는 사람의 사고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MZ세대’에 속하는 것만으로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옹호의 대상이 될 수도 없는 일이다.


바랬던 것은 성적이 아니다. 진정성을 보고 싶었을 뿐...


국제대회는 전쟁이다. 한 나라의 국기를 걸고 그 나라 최고의 선수들을 뽑아 승패를 정한다. 그 나라 최고의 에이스들을 모아 치르는 전쟁에는 국가 모두의 얼굴과 자존심이 걸려있다. 오늘날 국제 스포츠에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해당 나라의 국가브랜드 상승과 그로 인한 파급효과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수들의 ‘병역면제’도 ‘당신이 나 대신 내가 못 하는 것을 해주기 때문’에, 그리고 그 결과가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공공성’ 때문에 지금까지 인정되는 것이다. ‘대표’가 가지는 무게가 얼마나 막중하고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그리고 누군가는 평생 노력해도 그 자격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적어도 이들은 ‘명예’만큼은 지켜야 했다. 그를 존중해 주기 위해 국민은 세금으로, 응원으로 그들을 지켜봐 주는 것이다. 그런 막중한 대회를 준비하는 훈련에서는 ‘도박’의 ‘도’자도 나오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이나 세대의 문제가 아닌, ‘기강’과 임하는 ‘진정성’에 대한 문제다. 그래서 게임에 참가한 선수들의 행동을 ‘MZ세대니까 그럴 수 있지 뭘 그래?’라고 가볍게 넘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개인과 국가는 다른 것이다. 이들은 ‘국가대표’였다.

국가대표팀에서 대중이 진짜 원했던 것은 전쟁이나 다름없는 국제대회에서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인류 역사의 수많은 전쟁에서 전력의 강/약세는 그 결과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았다. 누가 봐도 뻔한 전투보다는 이길 수 없었던 상황을 극복하고 기적적인 결과를 만들어낸 역사에 사람들은 더욱 열광한다. 그리고 그 전쟁사에서 반드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진정성’과 ‘간절함’이다. 얼마 전 종영한 ‘고려거란전쟁’의 ‘강감찬’도,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오늘도 광화문에 영원히 서 있는 것도, 그들의 기적 같은 전적 때문만은 아니다.

스포츠도 비슷하다. 국가대표는 그것이 상징하는 명예에 버금가는 행동과 마음가짐을 바랄 수밖에 없는 자리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편협한 ‘국가주의’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애초에 국가대항전은 그런 의도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국가주의’만이 주는 달콤한 컨텐츠를 즐기는 것이 그 나라 국민이 국가대표를 통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그 ‘국가주의’의 핵심인 ‘진정성’을 핵심 컨텐츠로서 느끼고 싶은 국민은 어이없이 날아든 ‘카드 게이트’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도박인가, 아닌가?’, ‘MZ세대인가, 아닌가?’, ‘승리했나, 못했나?’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정성이 없어서 생긴 문제였던 만큼 그것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양파껍질 벗기듯 나오는 사태들을 진심으로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관련자들은 ‘해명’이 아닌 ‘진정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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