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공급은 미확정...업계는 美 ESS 시장 진출에 주목

삼성SDI가 테슬라에 전기차(EV)가 아닌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를 공급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달 3~4일 로이터통신 등 해외 보도에 따르면 협상 규모는 3년간 21억 달러(약 3조원) 수준이다. 해당 소식이 전해진 4일, 삼성SDI의 주가는 장중 8.4%까지 급등하며 시장의 관심을 끌었다.

이번 협상은 EV 수요 둔화로 주춤한 배터리 업계가 새 성장동력으로 ESS 시장을 주목하는 시점에 나왔다. 특히 미국 ESS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테슬라가 핵심 수요처로 부상한 모양새다. 테슬라 에너지는 최근 12개월간 43.5GWh(기가와트시)의 ESS를 배치하는 등 실적이 급증해, 보도된 연 10GWh(3년간) 규모의 물량을 충분히 소화할 것이란 분석이다.

RE+(Renewable Energy Plus) 2025에 발표한 삼성SDI의 ESS [사진=삼성SDI]
RE+(Renewable Energy Plus) 2025에 발표한 삼성SDI의 ESS [사진=삼성SDI]

미국의 정책적 배경도 주목할 부분이다. 미국 정부는 우려 외국 기업(FEOC) 지정, 관세, 수출 통제 등을 통해 자국 공급망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고 있다. 이러한 탈중국 기조는 EV 세액공제(30D) 규정에 직접 적용될 뿐 아니라, 배터리 공급망 전반에서 중국 외 공급사를 선호하게 만들었다. 테슬라 역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삼성SDI 같은 비 중국 기업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할 유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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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I는 이에 발맞춰 2026년 말까지 미국 내 ESS 생산능력을 30GWh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테슬라 역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스럽(Lathrop) 공장 가동에 이어, 2026년 하반기 출하를 목표로 미국 텍사스 브룩셔에 연 50GWh 규모의 메가팩 3 신공장을 계획했다. 업계는 양사의 미국 내 생산 거점 확대가 물류비 절감과 원가 경쟁력 확보, 인허가 리스크 완화로 연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SDI가 테슬라 공급망에 때마침 자리 잡을 기회가 열렸다는 분석도 나왔다. 기존 핵심 공급사인 파나소닉이 북미 계획을 조정한 데다, 테슬라 역시 파나소닉(북미 법인)과 CATL(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며 공급망 다변화를 꾀하는 흐름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ESS는 통상 LFP(리튬·인산·철) 비중이 높지만, 삼성SDI는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삼원계) 기반 고에너지밀도형은 물론, 미국 현지 생산 예정인 ESS 전용 SBB(삼성 배터리 박스) 1.7/2.0 등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갖췄다. 이를 통해 프로젝트별로 제품을 섞어 공급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협상 규모로 거론되는 3조원대는 3년 계약 기준이다. 업계에서는 ESS 산업이 EV 배터리 대비 변동성이 낮고, 프로젝트와 검수 기반으로 매출이 인식돼 상대적으로 가시성이 높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삼성SDI가 공식적으로 '미확정' 입장을 밝힌 만큼 최종 계약 여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리튬, 니켈 등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른 재협상 가능성과 강화되는 화재, 안전 규제 등도 잠재적 리스크 요인으로 꼽힌다.

테슬라 CI [사진=Tesla]
테슬라 CI [사진=Tesla]

협상이 성사될 경우, 분리막, 장비 등 삼성SDI와 함께하는 국내 배터리 협력사들의 북미 시장 공급 기회도 확대될 전망이다. 이번 협상은 단순한 대형 수주를 넘어, 테슬라의 에너지 사업 확대와 삼성SDI의 미국 ESS 증설 로드맵이 정확히 맞물렸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업계는 이를 삼성SDI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EV 중심에서 ESS로 질적 전환을 이루는 핵심 시그널로 해석했다.

한 배터리 제조업체 관계자는 "이번 협상은 EV 시장 둔화에 대응해 ESS라는 새 돌파구를 확보하는 의미가 크다"며 "특히 미국의 탈중국 정책 속에서 대형 고객사를 확보하는 것은 향후 북미 시장 공략에 중요한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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