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자세한 스포츠] 전례없이 119 두 번 부른 한국 축구, 불 신나게 꺼도 상 못 받는 김도훈, 마지막 남은 자존심

[뉴스워커_더 자세한 스포츠] 한국 축구가 결국 또 한 번 ‘불이야’를 외쳤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한축구협회가 6월에 열리는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2경기를 임시감독 체제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K리그 인천과 울산을 이끌었던 김도훈(54) 감독이 다음 달 6일 싱가포르 원정 경기와 11일 중국과의 홈 경기를 지휘하게 된다.

축구협회는 20일 “국가 대표팀 감독 선정을 위한 협상이 계속 진행되고 있어 6월 A매치 전까지 감독 선임이 마무리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를 대비해 오늘(20일) 오전 국가 대표 전력강화위원회를 열어 문제를 논의했고, 그 결과 6월 두 경기를 맡을 임시감독으로 김도훈 감독을 선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지난 2월, 전임 감독 클린스만이 카타르 아시안컵의 부진으로 중도 경질되고 그 뒤를 이어 올림픽 대표팀을 맡고 있는 황선홍 전 감독이 A대표팀 감독직을 겸임했다. 황선홍 감독은 임시감독 부임 후, 태국과 2경기를 치렀다. 홈에서 1-1로 무승부, 원정에서 3-0 완승으로 마무리했지만,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고 나간 U-23 카타르 아시안컵 8강전에서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에 무릎 꿇어 올림픽 10회 연속 진출이 무산되는 실패 겪고 쓸쓸히 퇴장했다.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 다시 또 김도훈이 소방수로 출격했다.

늑대 축구의 사자 잡기, 싱가포르 리그 팀 경력 6월 경기에 도움, 불명예스러운 퇴장.

김도훈 감독은 이미 K리그와 아시아 무대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베테랑이다. 울산 현대를 이끌고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싱가포르 라이언시티에서는 18년 만에 리그 우승을 끌어냈다. 그의 전매특허 전술은 4-1-4-1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늑대 축구'와 '철퇴 축구'. 끈끈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늑대 축구'는 인천 유나이티드 시절 돌풍을 일으켰고, 탄탄한 수비 후 역습을 노리는 '철퇴 축구'는 울산 현대의 아시아 정상 등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김 감독의 축구에는 '스타플레이어 의존증'이라는 그림자도 따라붙는다. 팀의 핵심 선수가 빠지면 팀 전체가 흔들리는 모습을 종종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특정 선수에게 너무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데, 그래서 이번 6월 경기에서도 기존 엔트리와 큰 차이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인천과 울산, 라이언시티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던 김 감독이지만, 끝은 시원치 않았다. 김도훈 감독은 2022년 7월 탬피니스 로버스와의 리그 경기 중 상대 팀 코치인 무스타피치 파루딘과 심각한 충돌을 빚었다. 파루딘 코치의 얼굴을 머리로 들이받는 등 몸싸움을 벌인 김 감독은 8월 10일 싱가포르축구협회로부터 3경기 출전 정지와 2000싱가포르달러(약 19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이 사건 이후 김 감독은 구단과의 계약이 해지됐다.

아무튼, 지금 현재 시점에서 당장 6월 6일 현충일에 맞붙을 싱가포르팀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김 감독이다. 길지는 않았지만, 싱가포르 리그에서 뛰어봤고 선수들을 직접 통솔해 봤다. 어떤 부분이 약점이고 강점인지 잘 모를 수가 없다. 3월 A매치에서는 태국전을 가장 잘 아는 박항서가 임시감독 후보로 올랐던 것을 보면, 이번 김도훈 감독의 싱가포르전은 조금 더 쉬울 수도 있다.

큰불은 아닌데… 그가 꺼야 할 불, 올림픽 진출 좌절된 지금 한국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

대표팀이 마주한 현실은 엄청 급한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클린스만호에서 일어났던 갖은 내홍들은 황선홍호에 오면서 어느 정도 꺼진 모양새다. 그러나 아직도 조직력에서는 문제가 많고 그 훌륭한 스쿼드를 가지고서도 걸맞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현존 아시아 최강 전력을 구비한 한국이 내홍 하나 수습 못 해서 FIFA 랭킹이 수십 위나 차이 나는 태국에게 홈에서 비겼다. 물론 원정에서 우려를 깨고 완승하였지만, 이렇게 경기력이 들쭉날쭉해서야 답이 없다. 그리고 그 경기 내용도 썩 좋지는 못했다.

앞으로 남은 2차 예선 2경기인 싱가포르전과 중국전은 사실, 객관적 전력만으로는 크게 우려할 만한 팀들이 아니다. 만약 지더라도 한국은 3차 예선에 어떻게든 진출은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한국이 어디 3차 예선 통과하고 좋아할 나라인가? 갈 길이 멀다. 올림픽 대표팀이 ‘도하 대참사’로 어이없이 무너지고 파리 올림픽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A대표팀뿐이다. 한국은 지난 22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여 10회 연속 본선 진출의 역사를 썼다. 26 북중미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면 11회 연속 진출의 역사를 쓴다.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 자존심이다.

한국은 현재까지 2차 예선에서 4경기 무패를 기록하며 C조 1위를 달리고 있다. 3차 예선 진출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해서는 조 1위뿐만 아니라 1 포트를 확보해야 더 수월한 본선 진출이 가능하다.

이번 월드컵 3차 예선은 지난 월드컵과 달리 3개 조로 나뉘어 진행된다. 현재 B조와 E조 1위인 일본과 이란이 톱 시드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과 호주가 남은 톱 시드 한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한국과 호주는 FIFA 랭킹에서 단 한 계단 차이로 팽팽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남은 두 경기 결과에 따라 호주와의 랭킹이 뒤바뀔 가능성도 존재한다. 만약 한국이 톱 시드를 놓치고 2포트로 배정된다면, 3차 예선에서 일본, 이란, 호주 중 한 팀과 같은 조에 속하게 되어 험난한 경쟁이 예상된다. 반대로 톱 시드를 확보하면 이들과의 경쟁을 피할 수 있으며, 3차 예선 초반에 홈 경기를 많이 배정받는 이점을 누릴 수 있다.

호주는 방글라데시와 팔레스타인과의 5, 6차전을 치르는데, 두 경기 모두 호주의 우위가 예상된다. 한국 대표팀은 6월 2연전을 모두 승리하여 톱 시드 확보를 위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김도훈 임시감독, 축협 시험 통과 후 정식감독? 런치 세트도 아니고…

현재, 축협은 ‘5월 중 감독 선임’ 약속을 어기고, 감독 선임을 원점에서부터 검토하고 있다. 제시 마시 감독과의 협상이 불발되었고, 헤수스 카사스 감독과는 제대로 된 협상조차 못 해보고 퇴짜 맞았다. 대표팀 감독 자리를 자원한 감독이 여럿 있다고 소문만 무성할 뿐, 현실 가능성 있는 인물은 딱 하나. 셰놀 귀네슈 전 FC 서울 감독이다. 그러나 정몽규 회장은 귀네슈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제 곧 유럽 리그가 종료된다. 많은 팬이 이번 축협의 결정을 두고 의견이 갈린다. ‘보다 좋은 조건으로, 보다 적합한 인물을 찾기 위한 시간 벌이, 여름 이적시장을 노리기 위해 김도훈 감독을 세웠다’는 의견. 그리고 한편으로는 ‘황선홍 때처럼, 김도훈 감독을 나중에 정식으로 선임하려는 것인가?’ 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 그 당시 많은 축구 팬이 축협의 ‘황선홍 정식감독 선임 시나리오’를 의심했고 정황상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했다. 첫째로 클린스만 위약금과 축구센터 건설로 돈이 없는 축협이 비싼 외국 감독을 선임하기는 어려웠고, 둘째는 클린스만의 기행이 외국 감독에 대한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 황선홍 감독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지만, 만약 황선홍 감독이 올림픽 진출에만 성공했으면, 여론 반전에 성공하고 정식감독에 임명할 명분이 충분했다.

하지만 U-23 대표팀은 처참히 무너졌고, 황선홍도 쓸쓸히 퇴장했고 올림픽 대표팀 감독도 공석이다. 충격과 혼란의 상황 속에서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누가 먼저 눈에 띄면 모든 시선이 집중될 시기이다. 축협으로 향했던 모든 공격 루트가 감독으로 쏠릴 것이 뻔하다.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지금 누가 대표팀 감독을 자원해서 오르겠는가? 특히 내국인은 더할 터… 안 한다는 김도훈 감독을 선임하기 위해 삼고초려에 준하는 노력을 했다는 이야기가 떠도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아무리 맷집 센 감독이라도 십자포화에 한 줌 먼지로 사라질 자리가 지금의 대표팀 감독직이다. 여기에 오래 머물수록 손해다. 김도훈 감독은 대표팀 감독이 아쉬울 정도로 내리막길을 걷던 감독이 아니다. 23일 기준, 전북의 감독으로 김두현이 확정된 모양새지만, 그 자리엔 김도훈 감독도 이름이 올랐었다. 그리고 현재 베트남 국가대표팀에 김상식 감독이 선임됐지만, 김도훈 감독도 노리고 있었다. 불명예스러운 퇴장을 했지만, 직전 성적이 그리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갈 곳이 아직 열려있는 감독이다. 그런 그가 뭐가 아쉬워서 욕먹을 일밖에 없는 대표팀 감독직에 연연한단 말인가? 잘해도 본전, 못하면 감독 인생 끝날 텐데 말이다.

두 번째 소방수, 불 잘 꺼도 보람 별로 없을 것… 시간 끌어주는 만큼 협상력 다져야!

축협은 이번 일로 김도훈 감독에게 빚을 졌다. 만약 이렇게 하고도 좋은 감독 선임 못 하면? 그렇게 되면 김도훈 감독이 버텨준 것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여름 이적 시장을 노리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새 팀을 찾는 감독이 많아지는 만큼, 떠나는 이도 많을 터… 감독이 어디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것이 아닌 이상, 이름있는 감독은 그에 걸맞게 좋은 팀의 러브콜을 계속 받을 것이다. 원하는 팀이 수십 개는 될 텐데, 그 시장에서 경쟁자를 제치고 좋은 감독을 얻는 것은 어쩌면 지금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원래 이사철이 매물은 많이 나오지만, 그만큼 값도 비싸다. 어차피 누군가가 떠나는 만큼, 누군가는 집을 구해야 하니까 1:1 교환이다. 그리고 그 시기를 맞춰서 가격 변동도 생기기 마련이다. 수요가 있을 때,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당연한 시장 논리이다.

오히려 매물이 없을 때는 양자 모두 딱히 선택할 폭이 좁기 때문에 함부로 가격을 조절하지 못한다. 거래량 자체가 적을 때 틈새시장을 노려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도 협상하지 못했는데, 제대로 판 깔린다고 거래를 잘할지는 의문이다.

지금이야 귀네슈가 아쉬운 모양새로 강하게 한국행을 원하고 있지만, 수요자가 폭발할 시기에는 귀네슈도 갈 곳이 없지 않다. 축협이 돈이 많은가? 아니면 협상력이 좋은가? 어떤 거창한 감독을 선임할 계획이길래 그때 가서 기대를 건단 말인가? 뛰어난 감독이 시장에 나온다고 사 올 능력이나 되는가? 전력강화위가 무슨 권한이 있어서 후보와 협상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축협이 팬들에게 한 약속을 잘 지켜내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비난이 두려워 피하기만 하다가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을 방치하면 안 될 시기이다. 김 감독이 버텨줘도 그가 고생한 만큼의 보람은 없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제대로 된 감독을 선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던가, 아니면 솔직하게 국민 앞에 자신들의 부족함을 토로하고 눈높이를 낮춰 현실적인 대안을 받아들이던가… 이번 불을 못 끄면 3번째 119는 아마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