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VO 이사회 만장일치 승인, 균형발전과 엇갈린 지역 민심, 꼭 떠나야만 했나?

한국 배구계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를 꼽자면, 배구 저변의 불균형과 수도권 쏠림을 들 수 있다. 프로 시작부터 인구는 적지만, 타지역에서 관중을 끌어모을 수 있는 지역, 기업들이 선호하는 연고지가 수도권임을 감안해 프로팀을 유치하면서 쏠림은 예정된...[본문 중에서]
한국 배구계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를 꼽자면, 배구 저변의 불균형과 수도권 쏠림을 들 수 있다. 프로 시작부터 인구는 적지만, 타지역에서 관중을 끌어모을 수 있는 지역, 기업들이 선호하는 연고지가 수도권임을 감안해 프로팀을 유치하면서 쏠림은 예정된...[본문 중에서]

24, OK저축은행 배구단의 부산 연고지 이전이 KOVO(한국배구연맹)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승인됐다. 지난 10, 관계자의 연고지 이전발언이 나온 이후 2주 만에 확정되었다. 이로써 2013년 창단 이래 12년 동안 안산을 연고지로 삼았던 OK저축은행 읏맨은 25-20 시즌부터 부산 강서체육공원 실내체육관을 새 홈구장으로 사용하게 된다. OK저축은행은 더 큰 시장에서 자생력을 높이고, 지역 배구 저변을 확대하겠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웠고, 부산시는 롯데 자이언츠(야구), 부산 아이파크(축구), 부산 KCC(농구)에 이어 4대 프로스포츠 구단을 모두 품게 됐다. 배구계 역시 ‘V리그 남자부 7개 구단 중 5개가 수도권에 몰린 상황에서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는 시도라며 이번 결정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이사회 승인 직후부터 안산과 부산의 팬심은 극명하게 갈렸다. “팬도 없는데, 없는 팬들마저 버리다니 사채업자 구단 망해버려라”, “이럴 거면 부산에 새로운 팀을 창단하지, 안산 팬들은 하루아침에 배신당했다”, OK저축은행의 공식 SNS와 배구 커뮤니티에는 구단주가 쓸데없는 짓만 하고 있다”, “토사구팽, 배은망덕의 전형같은 안산 팬들의 분노가 쏟아졌다. “배구 교실이 폐강돼 100명 가까운 학생들이 갈 곳을 잃었다는 유소년클럽 학부모의 하소연부터, “이제 팬도 잃고 기업 이미지도 추락할 것이라는 한숨까지 다양했다. 반면, 부산 팬들은 이제 우리 동네도 프로배구 본다”, “OK저축은행의 부산 이전 대환영이라며 환영 분위기였다. 안산 팬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단순한 감정에 불과한 것일까?


왜 부산인가 - OK저축은행의 이유 있는결단과 배구계의 대의명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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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매력적인 환경에서 구단을 운영하고 싶은 것은 모든 스포츠팀의 바람일 것이다. OK저축은행이 부산행을 결정한 배경은 그런 면에서 합리적이다. 기존 안산 홈구장 상록수체육관(2,300)보다 두 배 가까이 큰 강서체육공원(4,189)을 새 홈으로 확보했다. 부산의 인구는 325만으로 61만의 안산보다 5배 이상 많다. 기업·공공기관도 훨씬 많다. 또한 최근 해운대, 명지국제신도시 등 신도시 개발로 젊은 인구가 늘고 있고, 지역 기업과 마케팅 협업 가능성도 크다. 뿐만아니라 이재명 정부의 핵심 공약인 해수부와 HMM의 이전 등으로 부산은 현재 지역 활성화의 핵심 축으로 재부상하는 중이다. 거기에 경남 지역 유일 구단의 브랜드 가치 상승은 덤이다. 권철근 구단장은 이사회 이후 프로배구가 모기업 의존도를 줄이고, 자립 기반을 마련하려면 인구와 기업, 관중 규모에서 부산이 안산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KBO, KBL 등 주요 프로리그에서 대도시=관중·후원사=구단 수익공식은 불문율처럼 여겨진다.

한국 배구계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를 꼽자면, 배구 저변의 불균형과 수도권 쏠림을 들 수 있다. 프로 시작부터 인구는 적지만, 타지역에서 관중을 끌어모을 수 있는 지역, 기업들이 선호하는 연고지가 수도권임을 감안해 프로팀을 유치하면서 쏠림은 예정된 것이었다. OK저축은행의 부산 이전 전까지 부··경에는 남녀 통틀어 단 한 팀의 배구팀도 존재하지 않았다. 남자부의 대전 삼성화재, 천안 현대캐피탈, 여자부의 대전 인삼공사, 김천 도로공사, 광주 페퍼저축은행을 제외하면 나머지 팀들은 전부 수도권에 있다. 클럽 하우스도 대체로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다. 이 문제는 한국 배구계의 고질병으로 인식되어 왔고 배구 저변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데 있어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지역 균형 발전이 화두로 떠오름에 따라 그 분위기를 탈 수 있는 OK저축은행의 이번 부산 이전은 배구연맹 측에서도 환영할 만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배구연맹은 수도권 쏠림을 줄이고, 전국적 배구 저변을 확대할 필요성이 절실했다고 강조한다. “부산엔 초중고 엘리트 팀만 13, 200여 개가 넘는 배구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생활체육인 1,700, 전국 4분의 1”이라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거기에 강만수, 김호철, 신치용, 문성민, 양효진, 박정아 등 국가대표 배구 스타플레이어들을 배출한 곳이 바로 부산이기도 하다. 스타플레이어가 흥행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보면 연맹 입장에서도 당연히 환영할 만한 결정인 것이다.


부산으로 간 또 하나의 구단, KCC의 이전은 납득할 만한데... OK저축은행과 달랐던 사례


OK저축은행에 앞서 부산으로 연고지를 이전한 스포츠 구단이 있다. OK저축은행의 연고지 이전이 적극적 선택이라면, KCC 농구단의 부산행은 거의 떠밀리듯이뤄졌다. KCC22년간 전주를 연고로 한 대표적 호남 농구팀이었지만, 2023년 여름 이사회를 거쳐 전주를 떠나 부산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표면적 계기는 홈구장 문제였다. 1973년에 지어진 전주실내체육관이 너무 낡았고, 관중석도 4,300석 남짓으로 KBL 10개 구단 중 가장 작았다. KCC는 꾸준히 새 경기장 좀 지어달라고 요구했지만, 전주시는 번번이 약속을 미뤘다. 2016년 신축 경기장 착공을 약속하고도 기약 없이 미뤘고, 급기야 2025년까지 구장을 비워달라는 통보까지 했다.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KCC의 이전은 팬들도, 언론도, 심지어 전주 지역 사회 자체도 대부분 시의 책임으로 보는 분위기다. “짓겠다던 체육관도 안 짓고 멀쩡한 팀을 내쫓다니”, “농구가 뒷전이 된 느낌이라는 원성은 실제로 전주시청 홈페이지와 시민단체 게시판을 도배했다. 심지어 KCC 출신 레전드 전태풍조차 언론 인터뷰에서 “KCC를 떠나보낸 전주시를 이해할 수 없다고 공개 비판했다. 실은 KCC의 지역 정착 노력 역시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연고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전주시가 갈등의 불씨를 키웠다. 농구계조차도 이런 상황이면 팀이 안 떠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동정론이 많았다. 결국 전북은 프로농구팀이 모두 사라졌고, 호남 전체 겨울스포츠도 직격탄을 맞았다.


OK저축은행과 KCC 이지스 연고지 이전 사례 비교


정리_뉴스워커
정리_뉴스워커

세월호 아픔을 함께한 ‘We Ansan!’ 시민의 응원과 동행한 12, 관계에 별문제 없었는데 이럴 수가...


KCC 사례와는 다르게 OK저축은행의 경우, 지역사회와의 관계가 딱히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2000년대 후반, 대부업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가 스포츠팀 후원이었다. ‘러시앤캐시시절에 서울 우리캐피탈 드림식스인수도 추진했지만,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그러다 2013년에 신생 구단 창단에 긍정적이던 배구연맹의 승인으로 지금의 남자부 7개 구단 시대를 열었다. 연고지를 아산시로 하려 했지만, 긍정적이지 못했다. 연고지는 안산으로 결정됐다.

당시 안산시장 김철민의 적극 지원 의사와 함께 정식 연고 협약 체결 이후 안산시는 홈구장, 숙소, 연습장 제공, 홍보 등 행정적·물리적 지원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창단 얼마 후 일어난 세월호 참사에서 안산시가 최대 피해자가 되자, 구단도 ‘We Ansan!’이라는 슬로건으로 지역사회와 깊은 유대관계를 쌓았다. 세월호 참사 때는 선수단 전체가 추모 유니폼을 입고, 시민들과 함께 희망을 나누는 등 안산을 진정한 우리 동네 팀으로 자리매김했다. 지역사회의 열렬한 응원에 힘입어 OK저축은행은 창단 2년 만인 14-15시즌 우승, 이듬해 15-16시즌 2연패를 달성했다. 15-16 V리그 개막전은 매진으로 출발했다. 구단 측도 유소년 배구 교실, 저소득층 지원 등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왔고 이는 모기업의 이미지 개선에 큰 영향을 주었다.

갑작스러운 연고지 이전에 대한 안산 팬들의 분노는 예견된 것이었다. KCC와는 다르게 안산시도 지역 친화적인 마케팅을 진행해 왔고, 안산 팬들의 충성도 또한 결코 낮지 않은 상황인데 뜬금없이 부산으로의 이전을 결정한 것이다. 직전 시즌에 리그 꼴찌를 했지만, 그것이 연고지 이전을 정당화시켜 주지는 않는다. 두 도시는 400km 정도 떨어져 있다. OK저축은행의 부산 이전이 아무리 구단에 좋은 조건이었다고 한들, 팬들 입장에서는 토사구팽’, ‘배은망덕이라는 표현이 나올 수밖에 없다.

기업의 도약,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대의아래, 팬덤의 씁쓸함과 배신감이 희생된 건 아닐까. 스포츠는 결국, 지켜온 팬들과의 관계 위에 세워진다. 오늘의 선택이 부산에선 새 출발이지만, 안산에 남은 이들의 상실감도 똑같이 기억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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