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수술실 내 폐쇄회로(CC) 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와 환자 모두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한동안 혼선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보건복지부‧의료계 등에 따르면 개정된 의료법이 전날(25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전신마취나 수면마취 등으로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하는 경우에는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 수술 장면 촬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환자에게 미리 고지를 한 후 환자나 보호자가 촬영을 요청할 수 있도록 요청서를 제공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병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촬영을 거부할 경우에는 벌금 500만원을 내야 한다.
이날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둘째날을 맞았지만 의료계는 개인정보 유출, 직업수행의 자유 등 기본권 침해가 우려된다면서 반대하고 있고, 환자들은 촬영 영상 유출과 영상 보관 기관 등을 두고 우려를 표하는 상황이다.
대한의협 “의료인 개인정보 유출‧직업수행 자유 등 기본권 침해 우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의료기관 중 수술실을 갖추고 있는 곳은 지난 2분기를 기준으로 총 8777곳이다. 의료법에서 정하고 있는 수술실 CCTV 의무 설치 대상은 ‘전신마취 등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의 수술실(국소마취 수술실·치료실 등 제외)’로 성형외과와 정형외과, 척추·화상 전문병원 등이 해당된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 수술실에 CCTV가 설치돼 운영될 경우,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인 등에 대한 민감한 개인정보 유출이나 직업수행의 자유, 초상권 등 헌법상 기본권 침해가 우려된다고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로 의사의 진료 행위가 위축돼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상당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환자의 민감한 정보가 녹화돼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고, 해킹으로 수술 환자의 신체 모습 등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특히 현직 의사의 93.2%는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의사협회는 전날 ‘수술실 CCTV 의무화 관련 회원 설문조사 결과 발표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의협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지난 8일부터 18일까지 열흘 동안 온라인으로 시행됐으며 조사에는 1267명의 의협 회원이 참가했다. 의협은 앞서 2021년 7월에도 의료법 개정안 법안심사소위 재논의를 목전에 두고 동일한 내용의 설문조사에 나선바 있다.
이번 조사 결과 CCTV 의무화법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2021년 조사 대비 3.2%포인트 증가한 93.2%로 나타났다. 2021년 당시에서는 90%의 회원이 설치 의무화법에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에서 의무화 반대 이유(복수응답)로는 △의료진 근로감시 등 인권침해(51.9%) △의료인에 대한 잠재적 범죄자 인식(49.2%) △진료위축 및 소극적 진료 야기(44.5%) △불필요한 소송 및 의료분쟁 가능성(42.4%) 등으로 나타났다.
의협은 또한 CCTV 설치 및 운영기준의 모호함도 문제로 지적했다. 보건복지부에서 CCTV 설치 및 운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놨으나 일선 지자체와 보건소로 이관되면서 기준이 불명확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주장이다. 의협 조사(복수응답)에서도 △설치·운영 기준 모호함으로 인한 의료법 위반(75.5%) △안전관리조치 모호함으로 인한 의료법 위반(62.0%) 등이 우려 사항으로 꼽혔다.
환자단체연합회 “의료 사고 여부 판단에 30일은 짧아…보관 기관 늘려야”
환자들은 영상 유출과 함께 CCTV 영상 보관 기간이 30일로 짧은 상황인만큼, 의료사고 진실 규명을 위해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환자가 사망한 경우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 행위의 전문성으로 인해 의료 사고 여부를 판단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장례 기간까지 감안하면 30일의 CCTV 영상 보관 기간은 짧다”면서 “촬영일로부터 보관 기간을 90일 이상, 적어도 60일 이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수술실 CCTV 의무화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은 지난 2016년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 윤곽 수술을 받던 중 과다출혈 등으로 사망한 故권대희 씨의 사고를 계기로 촉발됐다. 당시 사고 전모가 수술실에 설치돼 있던 CCTV 영상을 통해 드러나면서 이를 계기로 법안 통과가 탄력을 받았다. 당시 권씨를 수술했던 성형외과 원장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밖에도 성형외과 등에서 제기된 대리 수술 의혹이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의료진의 성폭력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수술실 내부에도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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