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스포츠·산업의 경계를 허물어라! ‘필승 원더독스’의 새로운 스포테인먼트

배구계가 감독 김연경에게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오로지 자신의 리더십과 신뢰, 도전 정신으로 팀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배구 팬들을 붙잡는 것은 물론, 추가적인 관심까지 얻을 수 있다. 김연경 본인이 배구계 전체의 영업사원이 되는 것...[본문 중에서]
배구계가 감독 김연경에게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오로지 자신의 리더십과 신뢰, 도전 정신으로 팀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배구 팬들을 붙잡는 것은 물론, 추가적인 관심까지 얻을 수 있다. 김연경 본인이 배구계 전체의 영업사원이 되는 것...[본문 중에서]

은퇴한 지 5개월. 어느 날 등장한 포스터 한쪽엔 ‘신인감독 김연경’이 적혀 있었다. 그렇게 그는 뜬금없이 ‘감독’이 되어버렸다. 이제 막 은퇴한 그에게 감독직을 내려줄 프로팀은 없었다. 그는 스스로 감독이 되었다. 아마 대한민국 여자 배구 역사상 은퇴 후 가장 빨리, 자력으로 ‘감독’ 칭호를 달게 된 사례일지도 모른다.

좋은 시선만은 아니다. 그가 코트에 서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기대에 비례하여 영원한 레전드로 곱게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크다. 연예인과 스포츠 영웅은 비슷해 보여도 팬들이 기대하는 바는 다르다. 

이름만 감독일 뿐, 가진 게 별로 없다. 여정을 함께할 약간의 사람들과 이름뿐인 팀 ‘필승 원더독스’, 그리고 ‘영웅’ 그 자신만이 존재할 뿐이다. 밑바닥이다. 세계적인 선수가 뭐가 아쉬워서 그러냐는 의견도 있다. 본인의 의지가 있고 차근히 지도자 코스를 밟으면, 너도나도 감독으로 불러줄 영향력을 가진 스타다. 그런데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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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던 여자 배구 살려낸 슈퍼 캐리, 존재 자체가 흥행 증명


배구계가 그의 은퇴를 두고 고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90년대 이후 침체된 여자 배구를 다시 인기 스포츠로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데뷔 후 10년을 넘게 정상에 있었지만, 마이너 종목의 한계에 막혔었다. 그러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신화를 기점으로 주목을 받았고,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보여준 실력과 자신감, 그리고 승부욕과 세러모니를 통해 대중들에게 자신을 강하게 각인시켰다.

많은 이들이 김연경의 팬이 되었다. 관중과 인기가 증가하였다. 시청률은 흥국생명을 따라다녔다. 배구계의 규모가 작다지만, 한 선수의 노력으로 특정 종목 전체의 흥행을 이토록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또 한 번의 위기, Key는 다시 신인감독에게로...


그러나 당장 이번 시즌부터 이것이 유지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배구계로서도 많이 고민하고 있겠지만, 쉽사리 답이 나오질 않는다. 흥행을 못해 관중이 떠나가고 인기가 떨어지면, 투자가 멈추고 돈이 마른다. 이것은 배구계 성장에 악순환이 된다.

통계청 기준 2024년 합계출산율은 0.75. 25년 기준 10대 인구는 약 45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0%에도 못 미친다. 한 명이 귀한 시대, 미래가 없는 종목을 자식에게 선뜻 권할 부모는 적다. 선수 육성은 언감생심이다. 이들이 자라서 배구라는 스포츠를 즐기리라는 법도 없다. 그러니 좀 더 공격적인 전략을 세워야 현상 유지라도 가능하다. 외연 확장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침 그것에 최적화된 인물이 배구계 밖에 있다.


KOVO/정리_뉴스워커
KOVO/정리_뉴스워커

우후죽순 생겨나는 스포테인먼트. ‘신인감독 김연경’은 어떨까?


2010년대에 스포츠 예능들이 서서히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우리동네 예체능’, ‘청춘FC 헝그리 일레븐’, ‘뭉쳐야 찬다’ 등이 흥행을 이끌면서 여러 예능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씨름의 희열’, ‘골때리는 그녀들’, ‘최강야구’, ‘불꽃야구’ 등등 종목 불문 확장 중이다. 특히 ‘골때리는 그녀들’은 6~10%(닐슨코리아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웬만한 스포츠 경기보다 높은 관심도를 보였다.

이렇듯 미디어 콘텐츠 산업에서 핫한 ‘스포츠 예능’을 좀 더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스포테인먼트(Sportainment)’라고 부른다. 스포츠(Sport)와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의 합성어로, 오락성을 함께 지니는 것을 의미한다. 학계에서는 꾸밈없는 스포츠에서만 볼 수 있는 진짜 리얼리티 + 좀 더 자극적인 예능적 스토리라인 + 영웅 효과 등으로 인해 ‘대중 친화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리고 콘텐츠의 본질인 스포츠 자체에 대한 관심을 더욱 유도하기도 한다. 때문에 많은 은퇴 선수가 종목의 ‘외연 확장’을 명분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배구계가 감독 김연경에게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오로지 자신의 리더십과 신뢰, 도전 정신으로 팀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배구 팬들을 붙잡는 것은 물론, 추가적인 관심까지 얻을 수 있다. 김연경 본인이 배구계 전체의 영업사원이 되는 것이다.


특명 - ‘제8구단 창설’의 요구조건, 예능을 넘어 스포츠로, 산업으로... 뉴 스포테인먼트


문제는 비슷한 콘텐츠 포맷 대한 피로감이다. 비록 ‘신인감독 김연경’이 배구라는 종목에 대해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고 해도, 뻔히 예상되는 흐름이 나온다면 신선함이 떨어질 수 있다. 자극성을 위한 억지 설정은 독이 될 수 있다. 이미 기존 예능들의 문제들이다.

서울과학기술대 이준호·이영주(2023, 한국소통학보)의 질적 연구에 따르면, 스포츠 스타는 신선함, 영웅적 호감, 승부욕, 친숙함 등이 예능에서 갖는 강점이라고 소개한다. 반면에 지나친 출연료, 다작 출연으로 인한 희소성 상실, 부족한 예능감, 부정적 이슈 등을 우려 요인으로 꼽았다. 또한, 스포츠 예능의 성공 요인으로 가장 중요한 점으로 ‘진정성’을 꼽고 있다.

KOVO/정리_뉴스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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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신인감독 김연경’이 타 예능과 다른 점은 명확한 ‘스포츠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스포테인먼트들이 ‘오락’의 영역을 쉽게 벗어날 수 없음에 생기는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산업 모델을 만들 가능성이 보인다. ‘필승 원더독스’의 목표는 독자적인 ‘제8구단 창설’이다. 스포츠로의 회귀이다. 이것은 배구의 본질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이자 예능과 스포츠, 산업 간의 벽을 허무는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다.

이제 겨우 팀을 만들어 선수를 모았다. 프로팀은 구단이 필요하다. 구단은 기업과 자본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팀이 매력적이어야 한다. 관객과 시청자를 모아야 한다. 이겨야 한다. 단순한 온라인 인기에서 머물지 않고 오프라인 행사와 굿즈 등의 비즈니스 가능성도 보여줘야 한다. 결과적으로 8구단의 창설은 여자 배구 전체의 외연 확대에 기여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배구계 전체를 관통하는 고민, 결코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 그렇기에 김연경과 필승 원더독스 소속 선수들은 타 예능보다 좀 더 긴장감 있고 진지하게 임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본인들을 다시 한번 ‘증명’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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